경기도 연천은 한마디로 땅 전체가 거대한 용암덩어리이다. 땅을 파서 확인할 필요도 없다. 연천을 가로지르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흐르면서 만든 협곡에 용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다. 이 용암으로 뒤덮인 연천 땅에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구석기인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연천을 여행하는 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만년전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나 다름없다.
한탄강·임진강 따라 용암 흔적
연천 땅을 돌아다니기 전에 우선 주상절리·판상절리라는 용어부터 좀 짚고 넘어가자. 한 번쯤 들어봤을 주상절리는 쉽게 말해서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균열이 생긴 것을 말한다. 제주도의 천지연폭포가 좋은 예이다. 몽당연필을 세워놓은 듯한 중문관광단지 바닷가의 지삿개 해변도 마찬가지이다. 경북 경주 양남면 바닷가에도 주상절리가 있다. 반대로 세로가 아닌 가로, 즉 옆으로 누운 것은 판처럼 생겼다고 해서 판상절리라고 한다. 두 가지 형태 모두 주로 바닷가에서 볼 수 있다.
연천은 바다가 없음에도 주상절리, 판상절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로 한탄강과 임진강이 있어서다. 기나긴 세월동안 강물이 흐르면서 양 옆으로 절벽을 만들었고 그 절벽에 용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강을 따라 10여 곳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는데 바위나 베개 모양으로 된 것도 있다. 특히 임진강에 있는 주상절리의 길이는 자그마치 2㎞에 이른다. 국내에 이렇게 긴 '병풍절리'는 오직 연천 밖에 없다고 한다.
용암작용을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재인폭포이다. 재인폭포는 '연천의 보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지형을 가진 폭포이다. 높이는 18m 밖에 되지 않아 정방·천지연 등 제주도의 폭포에 비하면 높지도 않고 수량도 적다.
하지만 폭포 주변이 판상절리와 주상절리로 뒤덮여 있어 연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용암이 흘러내려 뚜렷한 흔적을 남겨서다. 폭포 주변 밑바닥은 약 52만년 전에 형성됐다고 한다. 그 위로 10여m는 45만년 전, 맨 위층은 12만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맨아래층과 바로 위층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데 그 차이가 7만년전 쯤이나 된다고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왔다갔다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구석기 시대를 여행하다
용암으로 뒤덮인 연천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30만년 전쯤이라고 한다. 45만년전 두 번째 화산 폭발로 인해 용암이 흘러내려연천 땅을 뒤덮었다. 그 이후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흙이 쌓이고 나무가 자라고 생물이 살기 시작하면서 인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한탄강 주변에 살았다. 학자들은 당시 연천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한반도에 처음으로 정착한 인류라고 말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전곡리 선사 유적지 때문이다. 한탄강변에 있는 전곡리 선사 유적지는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을 대표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보고이며 이 땅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1978년 처음 발굴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주먹도끼 등 8000여 점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됐다. 이 유물과 유적지들을 조사해보니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전에 인류가 살았던 곳이 바로 연천땅 전곡리였다는 것이다. 출토된 유물들은 전곡선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유적지는 직접 볼 수 있다. 유적지 입구의 방문자센터는 구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정리해 놓았다.
방문자 센터를 나오면 바로 선사 유적지이다. 넓이만도 약 30만㎡에 이른다. 매머드와 구석기인들, 선사시대 집인 움막 등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그래서인지 유적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구석기 시대로 돌아간 듯하다.
지금 선사유적지에서는 겨울 축제가 한창이다.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인데 다음달 5일까지 열린다. 주먹도끼, 구석기 집짓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관람객이 많이 눈에 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구석기 바비큐이다. 돼지고기를 긴 꼬챙이에 꽂아 장작불에 직접 구워먹는데 축제 기간 동안 약 3000㎏의 돼지고기가 소비된다고 한다.
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연천까지는 차로 약 2시간 걸린다. 재인폭포는 군청에서 다시 20분 정도 더 가야된다. 전망대에서 볼 수도 있지만 계단을 따라 직접 폭포까지 내려가서 보면 연천 땅속 모습이 어떤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선사유적지에서 열리는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장 입장료는 3000원이다. 각 프로그램마다 이용료를 내야하는데 구석기 바비큐도 3000원이다. 031-839-2061(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