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게 된 열매가 이토록 달다면 기다릴 만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유독 스크린과 인연이 없었다. 지난 9년간 몇 편의 드라마를 통해 조인성이라는 배우의 존재감과 명성은 이어갔지만 충무로 복귀는 녹록치 않았다.
그 모든 아쉬움을 괜찮은 작품 한 편에 다 쏟아 부으라는 계시였을까. 영화 '더 킹(한재림 감독)'을 손에 쥔 조인성은 9년이라는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러닝타임의 80% 분량을 홀로 소화해 냈다. 스스로 "능수능란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는 아니다"고 자평할 만큼 조인성은 자기 객관화에 철저한 배우다. 이는 일각의 대중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더 킹' 개봉 후 혹여 단점이 보일까 걱정했다는 그의 말은 겸손으로 뒤바꼈다. 좀 달렸나 싶었더니 웬걸 훨훨 날아 다닌다.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제 몫만 해내도 성공적인 도전이었다. 그러나 조인성은 9년의 시간을 한풀이 하듯 제 역량과 촘촘히 쌓은 내공을 터뜨렸고 '조인성의 원맨쇼'를 완성시켰다.
극중 '킹'이 되고 싶었던 남자 태수로 분한 조인성은 10대부터 40대까지 표현해내야 했다. 극 초반 만화적인 설정은 일명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비주얼을 자랑하는 조인성이기에 고개가 끄덕여졌고, 일부 허당끼 가득한 성격도 실제 조인성의 성격과 찰떡같이 맞아 떨어지며 캐릭터를 '조인성화' 시켰다.
러닝타임 내내 흘러나오는 내레이션도 조인성의 몫이었다. 얼굴로 연기하고 목소리로 또 연기헀다. '더 킹'도 조인성도 서로가 서로를 이용했다. 이렇게 잘할거 왜 이제 왔나 싶을 정도로 조인성의 복귀는 성공적이다. 배성우는 인터뷰에서 조인성을 '엄살쟁이'라고 표현하며 "그렇게 잘해놓고, 혼자 다 해놓고 걱정이 엄청 많다. 나도 그렇지만 조인성 역시 다 제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엄살이다. 기대치를 높이려는 것이다"고 애정어린 속내를 표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모든 것을 '권법' 탓으로 돌릴 뻔 했다. 조인성의 복귀가 늦어진데는 그를 붙잡고, 그가 붙잡고 있었던 '권법'의 영향도 컸다. 군 복귀작으로 일찌감치 출연을 확정지었던 '권법'은 여러 사정으로 제작 무산이 반복됐고, 결국 프로젝트가 전면 중단됐다.
이쯤되니 '권법'에 조금은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물론 '권법'이 아니었다면 더 빨리 조인성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었겠지만 '더 킹'의 임팩트 만큼 강했을지는 미지수다. 좋은 상상을 하자면 1000만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을 수 있지만 작품도 운명이라고 조인성의 운명은 '더 킹'이었다.
'더 킹'이 주는 메시지 중 하나는 '선택'이다. 조인성은 '더 킹'을 선택한 이유로 "'글을 통해 나의 과거를 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난 과거에 어떤 고민을 했고, 내 선택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깊이있게 따져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전했다.
조인성이 '권법'을 선택하고 또 '더 킹'을 선택하면서 9년이라는 시간은 흘렀지만 2017년 연초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첫 흥행작의 기쁨을 만끽하게 됐고, 9년 만에 흥행 스코어를 갈아치우는 기록도 세웠다.
또 작품 자체가 시국과 절묘하게 맞닿으면서 관객들에게 더 큰 웃음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조인성의 선택 역시 신의 한 수가 됐다. 차기작은 조금 더 빨리 볼 수 있지 않을까. '흥행킹' 조인성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