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제작 드라마를 향한 관심이 벌써 식었다. 지난해 KBS 2TV '태양의 후예' 성공으로 너도나도 외치던 사전 제작 붐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이어지는 참패 탓이다. '함부로 애틋하게'는 김우빈·배수지의 조합과 '미안하다 사랑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를 쓴 이경희 작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한여름, 눈발이 날리고 두꺼운 외투를 입는 계절감은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했고 '쌍팔년도 신파' 내용은 채널을 돌리게 했다.
2015년 촬영을 끝내고 지난달 첫 방송된 SBS '사임당, 빛의 일기'도 반응이 시들시들하다. 단 4회 만에 동 시간대 KBS 2TV '김과장'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이영애와 송승헌이라는 환상 조합도, 지겨운 타임슬립물이라는 장르의 벽에 부딪혀 맥을 못 추고 있다.
미국 지상파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안투라지'의 실패는 지금도 입에 오르내린다. 조진웅·이광수·서강준의 대세 배우들과 하정우·김태리 등 브라운관서 볼 수 없는 배우들이 특별 출연했지만 방영 내내 1% 미만 시청률이라는 대참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용과 연출에 있어서도 시선을 끌지 못해 '망투라지'라는 비아냥거림만 받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모두 사전 제작을 피하는 눈치다. 가장 큰 이유는 피드백이 안 된다는 점이다. 뚝심을 갖고 대본을 쓰는 것이 작가의 힘이지만 아무리 스타 작가라도 시청자들의 반응을 무시할 순 없다.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내용에 참고한다. 사전 제작은 이러한 피드백이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과한 PPL(간접광고) 부작용도 있다. 대부분의 제작비를 PPL로 충당해야 하는 대작의 경우 유독 눈에 거슬리는 간접광고가 많이 나온다. '사임당'에서는 이영애가 장수 모델로 활동 중인 착즙기가 첫 회부터 등장했다.
중국발 한한령도 사전 제작 드라마의 앞길을 막았다. 제작비 상당을 '차이나 머니'로 가져와 한국과 중국 동시 방영을 노리는 게 사전 제작 드라마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사전 심의가 필요한 중국 정서상 동시 방영을 하려면 사전 제작이 필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중국 내 한류를 금하는 손길이 여기저기 뻗치다 보니 당연히 사전 제작 드라마의 필요성도 없어졌다. 또 사전 제작은 촬영 종료 시기를 정해 두지만 일정을 제때 맞춘 건 작품들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해도 많은 사전 제작 드라마가 출격을 앞두고 있다. 김희선·김선아 주연의 '품위있는 그녀', 주원·오연서의 '엽기적인 그녀', 이종석·수지가 나오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 임시완·윤아 주연의 '왕은 사랑한다'까지. 아직 방송국 편성도 받지 못한 작품도 있고, 남배우 군 입대 때문에 급히 진행되는 작품도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총괄 이사는 "사전 제작의 장단점이 명확하고 아직까지 국내 시스템과는 맞지 않지만 결국은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작가가 글을 잘 쓰고 감독이 연출을 잘하면 기본 이상은 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