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이 치른 다섯 차례 평가전의 타순이 말해 준다. 모두 선발 출장해 4번 타자로 네 차례, 3번 타자로 한 차례 나섰다. 이대호, 최형우와 함께 대표팀의 중심타선을 이룬다. 두 타자는 모두 오른손, 최형우는 왼손이다. 그의 타순이 네 번이나 4번으로 배치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형우를 제외하면 이번 대표팀에는 확실한 '거포'로 불릴 만한 좌타자가 없다. 그는 삼성 시절 선배였던 이승엽처럼 대표팀에서 '왼손 파워'를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 결과가 좋지 않다. 실전에서 안타가 1개도 없다. 평가전에선 14타수 무안타다. 몇 차례 날카로운 타구도 있었으나 일본에선 바람의 영향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아쉽게 파울이 되곤 했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도 "운이 안 따른다"고 아쉬워했다. 물론 가장 답답한 사람은 최형우 자신이다.
준비는 많이 했다. 지난해 연말 일정이 끝난 뒤 괌으로 날아가 개인 훈련을 했다. 대표팀의 오키나와 전훈에도 성실히 임했다. 하지만 메이저 국제 대회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부담감이 크다. 지난달 26일 쿠바와 평가전을 앞두고는 "마음이 급해지는 건 사실이다. 대표팀이 처음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도 "심적으로 첫 안타 생산에 매달리는 것 같다. 그래서 타석에서 긴장하고 조바심을 갖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타격은 사이클이 있다. 평가전 부진에 큰 의미를 둘 필요도 없다. 하지만 대회 개막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일본에서의 평가전 때만 해도 '하면 되겠지'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이 급해졌다. "조절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최근 표정도 어둡다.
이에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방법은 훈련이다. 1일 고척돔에서 열린 공식 훈련에서 타자 한 명이 유일하게 특타를 했다. 최형우였다.
최형우는 오후 1시께 이대호-김태균-이용규 등 주력 선수들과 함께 배팅 연습을 했다. 그런데 오후 2시쯤 다시 그라운드로 나왔다. 배트를 집어 들고선 타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차례 더 프리 배팅을 했다. 그라운드에 코치, 보조 요원들이 있었다. 선수는 최형우가 유일했다. 그는 후배들이 타격 훈련을 마친 뒤에도 홀로 남아 열심히 배트를 휘둘렀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그의 얼굴엔 땀방울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아직 타격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타이밍이 늦다 보니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이순철 대표팀 코치의 진단이다. 이 코치는 "이제는 감을 좀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최형우에게 이를 묻자 "결과가 나와야죠"라며 짧게 한마디를 하고선 라커 룸으로 사라졌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대회 개막. 이스라엘의 선발투수는 오른손 제이슨 마키다. 메이저리그 124승을 자랑하지만 현역 시즌 후반엔 왼손 타자에게 장타를 자주 맞았던 선수다. 1차전에서 최형우의 역할은 무겁다. 선배 이승엽은 과거 국제 대회에서의 성과에 "부담이 더 컸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지금의 최형우가 그렇다. 그도 이승엽처럼 부담을 이겨 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