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슬리 뮬렌 네덜란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은 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전(7일) 선발투수로 릭 밴덴헐크(소프트뱅크)를 예고했다. 대회 규정으론 6일 한국-이스라엘전이 끝난 뒤에 발표하면 된다. 하지만 굳이 숨기지 않았다.
뮬렌 감독은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고의 선수"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1라운드는 플레이오프를 치르지 않는다면 세 경기로 끝난다. 한국전에 밴덴헐크를 등판시켜 첫 경기부터 이기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감독의 말대로 밴덴헐크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에이스다. 경험이 풍부하다. 한·미·일 리그를 모두 뛰었다. 2007년 플로리다(현 마이애미)에서 데뷔한 그는 메이저리그 통산(6년) 8승11패 평균자책점 6.08을 기록했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맞물려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마이너리그 유망주라는 껍질을 깨지 못했다.
눈을 돌린 곳은 한국. 2013년 삼성과 계약했고, 기량이 만개했다. 두 시즌 동안 KBO 리그에서 뛰며 도합 20승13패 평균자책점 3.55로 에이스 역할을 했다. 특히 2014년은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부분 1위에 오르며 리그를 평정했다. 네덜란드 투수 중 대표적 '지한파'로 분류돼 일찌감치 한국전 선발로 예상됐다.
한국에 이어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외국인 에이스'급으로 활약했다. 2015년부터 소프트뱅크 유니폼을 입었다. 첫해 시즌 초반엔 2군에 머물렀다. 소프트뱅크 전력이 워낙 막강해 빈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오자 주머니 안의 송곳처럼 두드러졌다. 2015년 6월 데뷔 첫 승을 거둔 이후 무려 14연승을 기록하며 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도 7승3패 평균자책점 3.84로 준수한 성적을 보였다. 일본 대표팀도 밴덴헐크를 주목하고 있다. WBC 2라운드에 진출할 경우 일본과 네덜란드는 도쿄돔에서 맞붙는다.
갈수록 성장했다. 마이너리그 유망주 시절 밴덴헐크의 약점은 제구력이었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 2시즌 175이닝 동안 내준 볼넷은 37개에 그쳤다. 삼성에서의 첫 시즌엔 견제에 애를 먹었다. 상대 주자는 밴덴헐크를 상대로 도루 32번을 시도해 29번 성공했다. 하지만 삼성 시절 2군에서 슬라이드 스텝을 가다듬은 뒤 견제 능력까지 좋아졌다.
컨디션은 최상이다. 밴덴헐크는 지난달 27일 일본 미야자키에서 진행된 두산과 연습 경기에 선발 등판해 3⅔이닝 1피안타 2볼넷 6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시속 153km까지 찍혔다. 스트라이크존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의 구속이 웬만한 선발투수의 속구와 비슷한 141km였다. 여기에 슬라이더(136km)와 커브(122km)를 점검하며 컨디션을 조율했다. 일본에서 밴덴헐크를 지켜본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은 "삼성 시절보다 더 좋은 투수가 됐다"고 평했다.
당시 밴덴헐크는 경기 후 "삼성과 한국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한국에서 야구선수로 크게 성장해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지금도 많은 한국 팬들이 응원을 보내 주고 있다. 삼성에서 보낸 2년은 매우 소중했고, 아내도 한국에서의 생활을 무척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WBC 1라운드에선 한국 대표팀과 정면 대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