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도 많았고 악재도 끊이지 않았다. 후반작업 기간이 보편적으로 길어지면서 촬영 후 개봉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작품이 그렇지 않은 작품에 비해 더 많아졌지만 '루시드 드림(김준성 감독)'은 이상하리만치 개봉지연 꼬리표가 길게 따라 붙었다.
그 사이 어디에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자신의 첫 작품을 갈고 닦았을 김준성 감독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루시드 드림'을 둘러싼 소문과 별개로 김준성 감독은 '루시드 드림'이 오픈 되기도 전 차기작으로 연이어 의도치 않은 주목을 받아야 했다.
소문이란 늘 그렇듯 진실과 오해가 뒤섞여 있다. 그간의 심경을 '루시드 드림' 개봉과 함께 모두 털어낸 김준성 감독이다. 한국판 '인셉션'이라 비교되며 영화는 결국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도전 자체로 의미 있다는 평. 그에 대한 충무로의 기대감은 여전하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 '루시드 드림'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점수를 매길 수는 없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었다. 스태프 분들이 잘해 주셨고 믿음을 주셨다. 실패·성공을 떠나 감사한 분들이 많다. 만약 안 되더라도 그건 내가 반성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한다. 많이 배울 수 있었고 후회는 없다."
-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
"내가 워낙 영화계에서 존재감이 없다 보니 이름을 댈 만큼 유명하신 분들은 자 모른다.(웃음) 그래서 기회만 된다면 선배님들과 많이 교류하고 싶다. 존경하는 분은 강우석 감독님이다. 내가 강우석 감독님 밑에서 연출부 생활을 해 감독님의 카리스마를 익히 보고 자랐다. 사실 수 많은 감독이 있지만 진짜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사람은 몇 없다고 한다. 감독님은 누구보다 감독이라는 직책이 잘 어울리는 분이다. 감독님을 보며 자극도 많이 받았다."
- 감독은 어린시절부터 꿈꿨던 직업인가.
"9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이 많고 그런 느낌들이 좋다. 재미있는 것이 배우가 된 친구들은 어린시절 영화 속 배우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나도 저렇게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꾼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관객들이 어떤 영화를 보고 감동받아 울면 '저런 영화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나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운명적인 차이인 것 같다."
- 입봉이라는 거대한 관문 자체를 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가 워낙 영화로 입봉하기가 힘들다 보니 데뷔만 해도 성공이라고 한다. 근데 입봉이 또 끝이 아니지 않나. 모든 작품을 입봉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실 모든 감독의 목표는 어떤 수치로 따지는 흥행보다 내가 만든 영화로 세상과 소통하고,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그 마음이 힘든 시간을 버티게 만든 원동력인가.
"하고 싶어서 영화 공부를 했고, 하다 보니까 기회가 왔다. 영화 배우도 그렇지만 한 분야에서 버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어느 순간 목표의식과 목적도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 금수저가 아닌 이상 입봉 전까지 특별한 수입이 없어 생계가 힘든 감독들도 많다고 하던데.
"아쉽게도 난 금수저는 아니다. 부산 촌놈이다. 지금도 봉천동 원룸에 살고 있다. 투룸으로 이사가는 것이 꿈이다.(웃음) 입봉 전까지는 아르바이트의 연속이었다. 영화과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가 웨딩촬영이다. 스무살 때부터 최근까지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고(高)수입이다. 안 가 본 예식장이 없고 1000쌍 이상은 찍은 것 같다. 학원에서 연기하는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투잡, 쓰리잡은 기본이다. 그 모든 경험이 나중에는 큰 도움으로 남는 것 같다."
- SF 장르는 원래 좋아했나.
"좋아서 택한 것은 아니다. 자각몽이라는 소재에 끌렸던 것이다. 내 나이대에는 새로운 콘텐츠가 무기라고 생각한다. 소개되지 않았던 것,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야 할 것 같았다.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영화도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이다. 선호하지 않는 장르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 선호하지 않는 장르는 무엇인가. 혹시 공포?
"맞다. 딱 맞췄다. 공포영화는 별로 안 좋아한다. 그리고 이게 습관인지 성향인지 시나리오를 쓰면 자꾸 남자 배우들만 나오게 써지더라. 여배우 분들과도 작업하고 싶은데 멜로 감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작정하고 쓰지 않는 이상 힘들지 않을까 싶다."
- 특별히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루시드 드림'을 함께 한 배우 분들과는 해 주시기만 한다면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뵙고 싶다. 그리고 모든 영화 감독들의 꿈일 수 있는 송강호·이병헌 선배님도 만나뵙고 싶다. 젊은 배우는 예전부터 박정민 씨가 눈에 들어왔다. 연출부 막내일 때 강우석 감독님의 '전설의 주먹'에 황정민 선배님 아역으로 나왔는데 오디션 때부터 빛났던 친구다. 꽃미남 외모는 아니지만 연기는 굉장히 멋지고 잘생겼다.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희망적인 메시지였으면 더 좋겠다. 더 많이 연구하고 공부하고 배워야겠지만 '루시드 드림'을 통해 영화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관객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 차기작은 하정우·오달수와 논의 중인 '서울'이다. 일찍 오픈됐다.
"이전부터 갖고 있었던 아이템인데 '루시드 드림' 후반작업이 길어지면서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하정우 선배님과 대학 동문으로 잘 알고 있었던 사이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전혀 아니다. 콘텐츠 자체고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다. 아직 시놉시스만 간단하게 있고 시나리오 작업 단계라 말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정리되면 공식적으로 공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