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회 연속 준결승 진출을 달성했다. 일본 대표팀은 15일 도쿄돔에서 열린 WBC 2라운드 E조 최종전에서 이스라엘을 8-3으로 누르고 3전 전승 조 1위로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지었다. '사무라이 재팬'은 도쿄돔을 떠나 미국 LA의 다저스타디움으로 향한다. 아직 상대는 확정되지 않았다. E조 1위 일본은 오는 22일 F조 2위 팀과 4강전을 치른다.
'축제'라는 단어를 쓴 인물은 메이저리그 출신 이와무라 아키노리. 2007~2010년 탬파베이, 피츠버그, 오클랜드에서 뛴 그는 이번 WBC 일본 내 중계권사인 제이스포츠(J sports) 객원 해설위원을 맡았다. 야수 출신답게 "타자의 힘으로 끝내 버리니까요"라는 말을 더했다. 기쁨이 느껴졌다.
이번 WBC 일본 대표팀은 예전과는 달랐다. 전통적으로 WBC에서 일본은 투수력이 강한 팀이었다. 초대 우승을 차지한 2006년엔 경기당 2.6실점을 기록했고, 2연패에 성공한 2009년엔 1.8실점이었다. 이번 대회는 다소 다르다. 2라운드까지 경기당 3.7실점했다. 2013년(3.9실점)보단 다소 낫다. 하지만 2013년엔 총 7경기에서 다섯 번 4실점 이하로 상대 타선을 막았다. 2017년엔 6경기에서 세 번 5실점 이상이었다.
선발진에 부침이 있었다. 일본 대표팀의 실질적 에이스인 스가노 도모유키(요미우리)와 2016년 퍼시픽리그 평균자책점(2.19) 타이틀을 따낸 이시카와 아유무(지바 롯데)가 연이어 무너졌다. 2라운드 첫 경기인 12일 네덜란드전에 등판한 이시카와는 3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다. 14일 쿠바전에선 스가노가 4이닝 4실점했다. 하지만 선발투수의 부진에도 야마다 데쓰토, 쓰쓰고 요시토모, 나카타 쇼 등이 맹타를 휘두르며 화끈한 타격전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일본도 한국이나 대만과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스타들을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데 애를 먹었다. 투수는 1명도 없고, 외야수 아오키 노리치카가 유일한 현역 메이저리거다.
두산 베어스의 수석 코치를 지냈던 이토 쓰토무 지바 롯데 감독은 일본 야구를 '한 점을 소중히 여기는 야구'로 정의한 적이 있다. 요미우리 출신인 고마다 노리히로 고치 파이팅독스 감독도 "일본 야구는 오타니 쇼헤이, 다르빗슈 유 같은 투수들이 상대 타선을 막고 한 점을 내서 끝까지 지키는 야구"라고 했다. 이번 대표팀은 지키는 야구보다 점수를 내는 야구에 능하다. '일본 야구'의 색깔이 달라졌다.
일본의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인 도요우라 쇼타로는 이번 대회 일본에 대해 "화끈하다. 타격전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니 이전 대회보다 더 흥이 생긴다"고 했다. 다른 색깔의 야구가 승리뿐 아니라 일본 야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점도 소득이다. 지난 13일 네덜란드전에서 일본은 연장 11회 승부에서 8-6으로 승리했다. 동점이 세 번이나 이뤄진 시소게임 끝에 나온 승리였다.
제이스포츠의 한 PD는 "이 경기 시청률이 33%였다"고 밝혔다. 그는 "기대하지 않았던 수치다. 당초 한일전이 성사되면 가능하다고 봤던 시청률이다"고 밝혔다. 한국의 1라운드 탈락으로 일본 방송사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대 흥행 카드인 한일전의 소멸이 시청률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과거와 색깔이 다른 대표팀의 야구가 잠시 멀어지는 듯했던 WBC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야구팬들은 결국 '멋진 경기'라는 콘텐트에 반응한다. 일본 대표팀은 숨 막히는 접전을 통해 WBC 경기의 콘텐트 가치를 높였다.
'한 점을 소중히 여기는 야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3일 네덜란드전에서 센가 코다이, 마쓰이 유키, 마키타 가즈히사 등 일본 불펜 투수 8명은 7피안타 무실점으로 8이닝을 막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한 일본 프로야구단 스카우트는 "메이저리그 강타자로 구성된 팀을 '억제'했고, 그들을 타격의 힘으로 눌렀다"고 평했다. 그도 예상 밖의 경기 전재에 다소 놀란 눈치였다. 15일 이스라엘전에선 0-0으로 팽팽하던 6회말 대거 5득점하며 승부를 갈랐다.
오사카에 위치한 한 스포츠펍의 점주는 "적시타가 터질 때 가게 분위기가 달라졌다. 준비한 안주는 모두 매진됐다"며 타격전 승리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이어 "과거 WBC 대회 때는 매진된 적이 없엇다. 경기가 더 흥이 나기 때문에 고객들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반 야구팬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도쿄 시민인 이시다 히토미는 "야구는 잘 모르지만 지금 대표팀에선 '스몰볼'이 아닌 미국 야구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한국 야구도 종종 지켜본다는 사토 에미는 "투수는 일본, 타자는 한국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타자도 일본이 더 강하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일본은 2017년 WBC에서 아직 1경기도 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날아오는 승전보도 반갑지만, 달라진 '승리 방정식'으로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고있다. 지키면서 쳐 내는. '속 안 터지는' 야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