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로 길쭉한 작은방에 의자 5개가 놓여져 있다. 그 앞의 벽면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걸려 있고, 탁자 위에는 비디오 장비가 설치돼 있다. 프로야구 다섯 경기가 다각도로 중계되고 끊임없이 리플레이되는 이곳은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KBO 비디오판독센터다.
KBO는 올해부터 비디오판독센터를 운영한다. 지난해까지는 각 구장에 배치된 심판들과 경기감독관이 심판실에서 TV 중계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 의견을 모아 정심과 오심을 가렸다. 올해부터는 메이저리그의 비디오판독 방식과 동일하게 별도의 리플레이센터에서 전문 판독관이 판정을 내린다. 이에 따라 KBO 리그 규정 제28조 '심판 합의 판정'의 명칭도 '비디오판독'으로 변경됐다.
이전에는 TV 중계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끊기면, 애매한 판정이 나와도 확인할 영상이 없었다. 그래서 판정 번복이 불가능했다. 이제는 다르다. TV 중계 방송의 메인 화면 1개, 중계와 별개로 제공되는 방송사 촬영 화면 6개, 각 야구장 좌측·우측·정중앙에 별도로 설치한 3대의 카메라에서 송출되는 화면 3개로 그라운드 구석구석을 커버한다. KBO가 설치한 카메라 3대는 지난해 판정 번복 요청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1루와 3루, 홈을 중점적으로 찍어 비디오판독센터로 보낸다.
비디오판독센터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다양한 화면을 활용한 판독의 공정성 확보 ▲신속한 결정을 통한 경기 스피드업 ▲부정행위에 대한 모니터링 감시 강화가 골자다. 정금조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장은 "센터를 구축하고, 각 구장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구장과 센터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30억원이 넘는 돈이 투입됐다"며 "15개 구장을 찍어야 하는 메이저리그 비디오판독센터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점진적으로 시설과 인원을 더 보강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디오판독은 김호인 전 KBO 심판위원장을 비롯한 전문 판독관 3명과 공채로 뽑은 엔지니어 3명이 진행한다.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적정 인원을 검토했고, 5개 구장에서 동시에 판독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엔지니어 3명이 판독 화면을 편집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엔지니어들의 근무 로테이션을 위해 향후 인원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현장에는 KBO 판독 요원 5명과 각 구장별 보조 요원 1명씩 총 10명이 배치된다. 판독 요원은 중계차 신호를 연결하고, KBO 카메라와 서버를 관리하면서, 인터컴을 심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개막 3연전 동안 센터에서 비디오판독에 참여한 손주형 엔지니어는 "경기 내내 무척 바빠서 정신이 없지만, 지금 돌아가는 시스템에 무척 만족한다"며 "조금만 숙련도를 높이면 경기 시간 단축에 조금 더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스피드업 부분에서 큰 효과를 봤다. 심판들이 직접 심판실로 달려가 방송사의 화면을 보고 판단해야 했던 기존 방식보다 훨씬 시간이 단축됐다. 정 센터장은 "개막 3연전에서 총 19차례 비디오판독 요청이 나왔고, 8차례 판정이 번복됐다"며 "평균 판독 시간은 1분47초였다. 목표치로 설정한 2분 이내에 판독이 완료됐다"고 설명했다. 이종원 KBO 비디오판독센터 기술팀장도 "심판 합의 판정 요청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센터에서는 계속 화면을 리플레이하고 있다"며 "어쩌다 정말 애매한 상황이 나올 때 면밀히 살피느라 평균 시간이 늘어난 것일 뿐, 실제로는 현장의 심판들이 인터컴 장비를 전달받기도 전에 이미 비디오판독이 끝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으로도 더 신속하게 판정을 진행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KBO 비디오판독센터는 본연의 기능 외에도 경기 도중 벌어질 수 있는 부정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로 활용될 계획이다. 지난해 승부 조작 사태로 홍역을 앓은 KBO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 센터장은 "비디오판독이 신속하고 공정한 판정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승부 조작을 미리 감시하는 역할도 할 것"이라며 "승부 조작의 여러 유형을 파악해 경기 도중 계속 분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가장 자주 문제가 된 '첫 타자 볼넷'은 더 엄격하게 감독한다. 정 센터장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첫 타자 볼넷이 나오거나 한 투수가 반복적으로 첫 타자에게 볼넷을 내줄 때 더 유심히 볼 것"이라며 "경기가 종료된 뒤에는 판독 엔지니어가 경기 영상과 PGM을 모두 저장해 보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