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인정할 때가 됐다. 김남길(36)은 수다쟁이다. 진중하고 무게감 넘치는 캐릭터 이미지가 쌓이고 쌓여 현재의 배우 김남길의 분위기를 완성했지만, 실제 마주한 김남길은 그가 사랑 받았던 캐릭터들과는 꽤 많은 차이를 보인다.
왠지 해야 할 말 그 이상은 하지 않을 것 같고, 예민한 성격을 갖추고 있을 것 같지만 알고보면 수다스럽고 한 시도 자신을 가만두지 않는 장난기를 자랑한다. 천우희 역시 "오빠 가만히 좀 있어!"라고 말했을 정도라니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공식적으로 수다를 떨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인터뷰 역시 호탕한 김남길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한 질문에 홀로 5분 이상 답하는 것은 물론, 간간히 섞는 농담은 옵션이다. 코믹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석훈 감독)'을 택했을 땐 그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더라.
그런 그가 대중적인 이미지와 실제 성격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를 만나 훨훨 날았다. '어느날(이윤기 감독)'은 깊이있는 소재를 유쾌하고 발랄하게 담아내려 노력한 작품이다. 전작 '무뢰한(오승욱 감독)'과 비슷한 듯 다르다. 이번엔 멜로가 아닌 힐링을 전한다. - 오래 기다려야 했던 작품이다. 어땠나.
"CG에 아쉬움이 남더라. 우리가 작은 관에서 봐서 그런지 몰라도 화면이 좀 어둡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면서 (천)우희와 잠깐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특히 자기 감정 연기가 나올 때는 서로 걱정이 됐는지 '이상한 것 같지 않아?'라고 물었다.(웃음) 근데 우희가 너무 말을 걸어서 '가만히 좀 있어봐! 오빠 것도 좀 집중해서 봐야지'라고 한 마디 하긴 했다. 하하."
-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늘 그렇듯 개인적인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상업적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고, 관객들에게 친절한 영화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런 기대치도 있었는데 어떻게 봐 주실지 모르겠다. 전체적인 흐름은 좋은데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 감독과도 이야기를 나눴나.
"감독님은 좀 여성스러운 구석이 있다. 한창 후반 작업을 할 때는 혼자 엄청 예민해져 삐쳐 있었다.(웃음) 편집실에 가면 '뭐가 이상해서 그러세요. 더 찍지 그랬어. 이야기를 해~'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랬던 것에 비하면 당신이 의도한대로는 잘 나왔다고 하시더라. 최선을 다 했다고 만족해 하셨다."
- 이야기 하는 것이 꼭 감독 같다.
"그래도 크고 작은 영화를 여러 편 찍었다고 영화의 전반적인 것들에 관심이 생긴다. '어느날'은 독립영화로는 큰데 상업영화로는 작은 사이즈라 일단 촬영장에 나가면 당일 목표했던 장면은 꼭 다 찍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거나 딜레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적게 만들어야 했다."
- 상의와 논의 과정을 많이 거쳤겠다.
"초반에는 나도 감독님도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하니까 술을 한 잔 씩 마셨는데 자꾸 다른 이야기를 했다.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콘티 작가님과 이야기를 할 때 좀 했던 것 같다.(웃음) 돈이 많다고 해서 영화를 잘 찍는 것은 아니다.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버릴 것은 버리고 꼭 갖고 가야 하는 것은 갖고 가는 선택의 과정이 필요했다."
- 그 지점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나.
"나보다는 감독님이 속상해 하셨다. 병원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치르는 장면도 사람들이 더 북적북적하고 왁자지껄한 느낌이 들길 바라셨는데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시간 안에 찍어야 해서 부족함을 느끼셨던 것 같다. 준비를 해도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 직접 연출을 해 볼 생각은 없나.
"내가 예전에 갤럭시(휴대폰)로 어쭙잖게 연출을 해 본 적이 있다. 근데 촬영 감독님과 싸웠다.(웃음) 외국 모델을 기용해서 끝내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지, 연출은 처음이지, 하고 싶은건 많지.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멘붕이 되더라. 촬영 감독님은 답답하니까 '뭘 찍고 싶은건지 이야기를 해라!'라고 소리치시고. 평소 친하고 존경하는 감독님이셨는데 내가 연기를 부족하게 해도 짜증 한 번 안 내셨던 분이 그 땐 그러시더라."
- 감독의 고충을 제대로 느꼈겠다.
"내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현장에서 감독님을 닦달하지 않는다.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이라 '빨리 빨리 찍어요!'라고 했는데 이젠 안 그런다. '다그치지 말자. 감독님도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기다려 주자'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 투자에도 관심이 있지 않나. '어느날'에는 투자하지 않았나.
"안 했다. 나 먹고 살기도 힘들다. 하하."
- '어느날'은 작품이 깔끔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약간 느린듯한 분위기도 좋고.
"'해적' 때 '8월의 크리스마스마스'가 재개봉을 했다. 가서 봤는데 지금 같았으면 바로 바로 넘어갔을 장면이 그 때는 꽤 오랜 시간동안 화면을 그대로 두더라. 여백의 미가 느껴졌다. '무뢰한'도 옛날 영화 느끼미알 좋았다. 그런 영화를 좋아해 주시는 관객 분들도 있지만 빠른 템포의 영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대부분 '뭐가 저렇게 길어~'라는 강박증이 생기는 것 같다."
- 누군가는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정석대로 찍었고 착하게 찍혔다. '지루해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은 있는데 어떤 부분은 일부러 그런 콘셉트로 잡았기 때문에 만족한다. 대학생들이 찍은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상업영화인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웃음) 하지만 이윤기 감독님 영화 중 가장 상업적인 작품이고, 가장 관객이 많이 들 영화라고 자신한다."
- 어느 정도 수치를 예상하나.
"감독님이 '10만? 20만?' 이러시길래 내가 '50만!'이라고 했다. 물론 손익분기점은 100만 명을 넘어야 한다. 하하. 우리의 고민을 관객 분들이 알아 주실 것이라 믿는다. 무리없이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거울 앞 허우적 연기가 인상 깊었다.
"기가 차서 웃긴 것 아닌가.(웃음) 그럴 때가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포인트에 웃음이 터지는. '해적' 때도 (손)예진이랑 바닷가에서 소변을 누는 장면이 있었는데 관객 분들이 엄청 웃으셨다. '이게 웃겨? 진짜?'라고 둘이 똑같이 말했던 기억이 난다. 찍을 땐 엄청 진지했다. 과장돼 보일 수 있으니까. 허우적 연기도 마찬가지였다."
- 여러 버전이 있었을 것 같다.
"맞다. 작정하고 웃기려는 버전도 있었다. 근데 그럴 땐 감독님과 '너무 웃기려고 하는 것 같나?'라고 이야기 하면서 수위를 조절했다. 어린이날 행사에서 연을 만들 때도 아픈 아이가 자기 병원비가 많이 들어 아빠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말하는데 순간 아빠가 어린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할까 싶어서 '아빠가 그런 이야기도 해?'라고 애드리브를 쳤다. 감독님께서 '그건 좀 빼자!'라고 하시더라. 진지한 상황에 아픈 애한테 그러고 싶냐고. 하하."
- 확실시 적정선을 지킨다는 것이 중요한 만큼 어렵겠다.
"우리끼리는 재미있고 현장에서는 웃긴데 관객들은 완성된 영화만 보게 되기 때문에 모든 분위기를 느낄 수 없지 않나. 그러다 보면 장난스럽게 던진 애드리브가 먹힐 때가 있다. 천우희 손에 물이 닿지 않는 것을 보고 기절하는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감독님에게 '이쯤에서는 기절할 법 하지 않냐'고 했고, 리허설 겸 한 것이 편집에 포함됐다. 난 내가 해놓고 오히려 '너무 그렇지 않냐'고 물었다. '말장난은 안 되고 이건 돼요?'라고 반박하기도 했는데 감독님 나름의 기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 벚꽃 장면은 작정하고 예쁘게 보이려는 신 같았다. 겨울 개봉에서 봄으로 개봉이 늦춰진 것이 그 장면 때문에 신의 한 수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오, 소름 돋았다. 딱 원했던 반응이다. 연기 자체는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장면은 예쁘게 보이길 원했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이 손 하나 잘 받쳐 줘야지'라는 생각에 엄청 의식하면서 연기 했을텐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사실 겨울 촬영이라 날씨가 엄청 추워 얼어 죽을 뻔 했는데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참기는 했다.(웃음) 주변에서도 잘 나왔다고 해 주셔서 내심 기분이 좋다. 난 그 장면을 보면서 오글거려서 '오오오우' 이랬는데 우희가 '괜찮아, 괜찮아~' 하더라."
- 아쉬운 편집신은 없나.
"아쉽다기 보다는 군데 군데 조금씩 더 이어지는 신들이 있었다. 와이프와의 이야기도 조금 더 세밀했다. 부동산업자와 신혼부부들이 찾아와 강수는 와이프 생각에 못 올라가는 2층을 구경하고, 방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와이프에 대한 추측을 한다. 난 그걸 끝까지 못 듣고 뛰쳐 나가 우는 신도 있었고, 김치 먹는 장면도 뒤에 더 그런 신이 있었다. '꺄르르' 분위기 같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