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득점 한 번 더 한다는 생각으로 뛰면 결과도 잘 나오겠죠? 마침 삼성전이기도 하고." 지난 5일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두목 호랑이' 이승현(25)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2016~2017 KCC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인천 전자랜드의 6강 플레이오프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다. 당시 성적은 전자랜드가 2승1패로 삼성에 간발의 차로 앞서 있었고, 오리온의 상대가 어느 팀이 될지는 말 그대로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인터뷰를 위해 나타난 이승현에게 어느 팀이 올라오길 바라는지 물어 본 이유다.
이승현의 대답은 간결했다.
"삼성이죠. 내가 보니까 우리가 삼성한테 경기력이 좋았어요. 올라오라고 응원하려고요."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삼성은 남은 2경기서 모두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3승2패로 오리온이 기다리는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두 팀은 11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리는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을 시작으로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두고 5전3선승제의 맞대결을 펼친다.
이승현의 말대로 오리온은 삼성전에 좋은 기억이 많다. 올 시즌 상대전적에서 4승2패로 앞서 있고, 특유의 '포워드 농구'도 건재하다. 삼성이 6강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르고 올라온 만큼 체력면에서도 오리온 쪽이 우위에 서 있다. 이승현 개인도 마찬가지다. 지난 5라운드 삼성과 맞대결에서는 33득점을 터뜨리며 프로 데뷔 후 개인 최다 득점(종전 24득점) 기록을 새로 썼다.
이승현은 "정규시즌 때 내가 올린 33득점이 우리 팀 국내 선수 최다 득점이더라. 플레이오프 때도 그런 목표(33득점)를 설정하면 잘 되지 않을까"라며 미소를 보였다.
삼성전을 앞두고 의욕이 넘치는 건 이승현만이 아니다. 같은 팀의 '맏형' 문태종(42)도 마찬가지다. 이승현은 "삼성에는 (문)태영이 형이 있지 않나. 태종이 형이 3승으로 끝내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귀띔하며 "빨리 끝내고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하겠다"는 자신만만한 포부를 함께 전했다.
눈앞의 상대인 삼성을 넘는 게 우선이지만, '디펜딩 챔피언' 오리온 입장에서는 챔피언결정전 생각도 안할 수가 없다. 반대편에서는 안양 KGC인삼공사-울산 모비스가 챔피언결정전을 두고 대결을 펼친다. 만약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게 되면 두 팀 중 한 팀과 만나야 한다. 이승현은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가면 어느 팀과 붙어도 상관 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모비스와 붙고 싶다"는 답을 내놨다. 이종현(23)과 우위를 가려야한다는 이유였다.
이승현의 대학 후배인 이종현은 프로 무대에 데뷔하며 "'두목 호랑이' 이승현을 잡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이에 이승현은 "군대가기 전에 이종현(23)을 한 번 꺾어놔야 한다. 내가 군대가면 앞으로 2년 동안 맞대결이 없을텐데 승부를 보고 가야 한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이미 상무에 지원서를 낸 이승현은 올 시즌이 군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이나 다름없다. 당분간 프로 무대에서 이종현과 겨룰 일이 없는 만큼 '선배'의 위엄을 톡톡히 보여 주고 떠나겠다는 각오다. 물론 군 입대 전 오리온에 2연패의 기쁨을 안겨 주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이승현의 '우승 의욕'을 자극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승현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아버지 이용길씨를 두고 군대에 가야 한다. 그동안 자신의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 선물로 우승을 안겨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승현은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은 우승밖에 없는 것 같다. 우승하고 멋지게 군대가겠다"고 굳은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