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는 조별예선과 16강전 기간동안 '아빠가 소개하는 태극 소년' 시리즈를 연재했습니다. 송범근, 조영욱, 우찬양, 정태욱, 한찬희까지 총 5명의 선수들을 그들의 아버지가 소개하는 코너였습니다. 21명의 선수들을 미처 소개하기도 전에 U-20 대표팀의 위대한 도전이 멈췄습니다. 이로써 이번 연재도 함께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주인공은 한찬희의 아버지 한문식 씨입니다. 한찬희는 월드컵 개막 전 친선경기 도중 얻은 부상으로 이번 월드컵에 한 경기밖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한문식씨는 아들에게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응원의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비단 한찬희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4강 신화의 꿈을 품었던 태극소년들 모두에게 전하는 당부이자 바람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한문식씨의 말을 빌려 대한민국 U-20 대표팀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아들아. 너무 아파 말아라. 늘 그랬듯, 시련은 꼭 극복할 수 있단다."
1996년의 어느 가을날. 한찬희(20·전남 드래곤즈)의 아버지 한문식(51)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순천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아내의 배 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 찬희'가 5개월째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해야 할 부부의 표정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한씨는 떨고 있는 아내의 손을 말없이 꽉 잡고만 있었다고 했다.
"살고 있던 전남 순천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더니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 보는 게 좋겠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했지요. '뭔가 큰 일이 있구나.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아들을 떠나보낼 수도 있겠구나' 싶어 괴로웠지요."
간절한 기도 덕이었을까.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으로 찾은 서울 병원의 의사는 검진 끝에 "별일 아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진단을 내렸다. "(한)찬희를 보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서울 병원으로 오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시련을 잘 통과한 둘째 아들 한찬희는 아픈 곳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각종 운동 종목에서 대표를 도맡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축구에 관심이 많던 친형을 따라 인근 축구부에 갔다가 정한균(59) 순천중앙초등학교 감독의 눈에 띄면서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흔히 말하는 '친구 따라 오디션에 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나만 붙은 케이스'가 바로 한찬희였다.
정 감독은 순천중앙초등학교 축구부 창단 멤버로 기성용(28·스완지 시티)를 키워 낸 인물로 유명하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호랑이 선생'은 꼬마 한찬희를 4학년 때부터 6학년 형들과 함께 뛰도록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압도적인 기량과 센스는 형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았다.
"정 감독님께서 찬희에게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맡기셨어요. '(기)성용이 이후로 4학년 짜리가 월반해 뛰는 경우는 처음이다. 잘 키워 보시라'는 말씀도 해 주셨지요. 실제로 찬희는 성장하면서 축구로 부모를 실망시켰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팍팍한 삶에 지쳐 있다가도 찬희 경기를 보면 다시 힘이 났어요."
각급 청소년 대표팀마다 꼬박꼬박 이름을 올렸다. 수원 JS컵(2015, 2016)과 AFC U-19 챔피언십(2016), 포르투갈 친선전(2017), 아디다스컵 U-20 4개국 축구대회(2017) 등 굵직한 대회마다 대표팀의 허리를 받쳤다. 지난해 열린 수원 JS컵 U-19 국제청소년축구대회 브라질과 1차전에서 0-1로 뒤지던 전반 38분 동점골을 터뜨린 인물도 그였다.
순천에서 소박한 삶을 살던 부부에게 아들 찬희는 축구로 기쁨을 주고 희열을 선사했다.
"전남에 입단한 뒤 첫 월급을 받고는 우리에게 준다면서 가방과 시계를 사 왔더라고요. 우리 집은 평범한 가정입니다. 찬희를 응원하는 것 말고는 별다르게 해 준 것도 없어요. 자기도 사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인데…. 그저 흐뭇하고 고마웠어요."
한찬희는 U-20 대표팀 최종명단에 포함된 뒤 오직 월드컵 준비에만 몰두해 왔다. 유독 중원 싸움이 치열한 '신태용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의 '네버스톱(Never-Stop)'이란 애칭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을 한 달 반가량 앞두고 열린 온두라스와 U-20 4개국 국제축구대회에서 허벅지 근육이 올라오는 부상을 입었고, 한동안 경기를 뛰지 못했다. 한찬희가 A조 조별예선 1~2차전에 나서지 못한 이유였다. 16강을 결정지은 뒤 잉글랜드전에서 기회를 얻었지만 경기력이 충분히 올라오지 못해 일찍 교체됐다. 한씨는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일부러 쾌활한 척하는 아들을 보며 함께 마음 아파했다.
"원래 밝은 아이인데 요즘 보면 정말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찬희에게 태어나기 전 서울의 큰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살다 보면 시련은 오게 마련이죠.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인생입니다. 찬희가 부디 지금의 시련을 잘 이겨 내 주길 바랍니다. 아들,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