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이 전세자금대출 연장을 받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신규 발급 중단에 이어 이제는 기존 고객들의 대출도 유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 고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한 자산관리 서비스에 무게를 두고 있는 한국씨티은행이 서민들이 주요 고객층인 상품을 아예 없애는 단계에 들어서며 '서민 고객'을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9월부터 전세자금대출 연장 중단
1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은 오는 9월 1일부터 SGI서울보증과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대출 연장을 중단한다. 지난해 3월 전세자금대출 신규 발급을 중단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연장도 받지 않는 것이다.
전세자금대출은 전세보증금을 빌려주는 상품으로 그 특성상 주요 고객층은 서민이다.
보통 대출 기간은 전세 기간에 연동돼 2년인 경우가 많지만 전세 계약을 연장하게 되는 경우에는 대출도 함께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계약 연장을 중단하게 되면서 당장 만기가 코앞인 고객들은 상환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현재 한국씨티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고객은 2500여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타행으로 갈아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시중은행 규정상 만기가 1년 이상 남아 있어야 타행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 관계자는 "대부분 고객들이 전세 계약 만기 1~2개월 앞두고 연장하기 때문에 대출 연장도 이 시기에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연장이 어려워지게 되면 최악의 경우 고객들은 상환을 위해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고 이후 다른 은행에서 새로운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등 불이익이 매우 커진다"고 말했다.
위법 소지도 있다.
은행법 52조에서는 은행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이용자의 권익을 부당하게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객의 신용도가 낮아지지 않은 이상 대출 연장을 받아 주지 않는 것은 이 같은 조항에 어긋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연내 예적금담보대출도 중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적금담보대출은 고객이 은행에 맡긴 정기예금이나 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소액 대출 상품이다. 큰돈을 빌리는 것이 아닌 이상 은행이 수익 목적으로 하기보다 고객 차원의 서비스 성격이 강하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상품의 비중이 높지 않아 중단하게 됐다"며 "(전세자금대출 연장 중단은) 지난해부터 신규 발급을 중단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연장을 잠정 중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단순 신용대출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주거와 직결되는데다 작은 금액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기존 대출을 타행으로 옮길 수 있게 하는 등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 없이 일방적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소비자에게 가혹하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 타깃…고객수 이미 감소세
한국씨티은행이 주 이용자가 서민층인 상품을 없애는 것은 고액 자산가를 타깃으로 하는 사업 정책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2015년 반포지점에 이어 지난해 청담지점을 자산관리(WM)센터로 새롭게 내놨다. 두 지점 모두 신흥 부유층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과 도곡·분당에도 이 같은 WM센터를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다.
오는 7월부터 전국 영업점 126개 중 80%에 해당하는 101개를 폐점하는 것도 이 같은 정책과 맞물려 있다. 특히 울산·제주·청주·경남 등에는 남게 되는 영업점이 하나도 없어 고객 불편이 예상된다.
고객은 벌써부터 감소세다.
지난 5월 한국씨티은행의 이탈 고객 수는 총 7045명으로 전월인 4월 이탈 수인 1752명에서 4배 이상 급증했다. 두 달 동안 총 8797명이 씨티은행의 계좌를 없앤 것이다.
이탈 예금도 늘었다. 지난 5월 수시입출금과 정기예금 이탈 금액은 3040억원으로 전월 1427억원보다 2배 넘게 늘었다.
여기에 씨티은행이 타깃으로 하는 고액 자산가들의 이탈 규모도 적지 않다. 씨티은행은 자산이 2억원 이상인 고객을 '씨티 골드'로 분류하고 있는데 5월 2억원 이상 고객의 이탈 수는 306명으로 지난 4월 280명보다 늘었다. 이탈 예금도 5월에 1470억원으로 전체 이탈 금액(304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씨티은행 측은 "잔액은 없으나 계좌만 있는 무거래 신탁계좌가 정리되면서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