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유독 완투승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한 선수가 벌써 두 차례 완봉승에 성공했고, 하루에 완투승 투수 두 명이 동시에 탄생했다. 이달에만 투수 다섯 명이 완투승에 성공했다. "완투형 투수가 사라졌다"는 한탄은 조금씩 사그라드는 모양새다.
지난 20일이 상징적이었다. LG 데이비드 허프와 SK 문승원이 나란히 9이닝을 홀로 책임져 승리를 가져왔다. 허프는 잠실 삼성전에서 9이닝 7피안타(2피홈런) 1볼넷 2탈삼진 3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두 번째 완투승을 거머쥐었고, 문승원은 인천 NC전에서 9이닝 7피안타 1볼넷 1실점(비자책)으로 잘 던져 데뷔 첫 완투승을 신고했다. 같은 날 투수 두 명이 완투승을 동시에 달성한 것은 거의 2년 만이다. 종전에는 2015년 7월 5일 kt 크리스 옥스프링과 SK 메릴 켈리가 차례로 완투승을 올린 게 마지막이었다. 지난해에는 한 번도 없었다.
확실히 올 시즌 들어 완투승 빈도가 늘었다. 지난 시즌에는 완투승이 총 12차례 나왔다. 올해는 시즌이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이미 지난해와 같은 수치를 찍었다. 20일까지 나온 12건의 완투승 가운데 절반이 완봉승이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이 아닌 국내 투수들의 완투승이 늘어났다는 게 고무적이다. 배영수 장원준 유희관처럼 경험이 풍부한 선발투수들은 물론, '영건'들도 완투승 투수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완봉승을 두 번이나 해낸 KIA 임기영과 kt 고영표 그리고 문승원까지 모두 올해 처음으로 완투승의 기쁨을 맛봤다.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려다 너무 많은 공을 던져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분명히 환영할 만한 현상이다.
과거에는 완투형 투수가 많았다. 윤학길 한화 투수코치가 대표적인 선수다. 현역 시절 완투만 100번을 했고, 그 가운데 74번 승리투수가 됐다. 완투와 완투승 모두 2위와 차이가 큰 KBO 리그 통산 최다 기록이다. 완봉승도 통산 19회나 해내 역대 3위에 올라 있다. 윤 코치는 완투승의 가치를 묻자 "팀에 도움이 되는 기록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혼자 한 경기를 모두 책임지면 나머지 투수들의 과부하를 막고 불펜 자원을 세이브할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팀 전체적으로도 한 템포 숨을 고를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민철 MBC SPORTS+ 해설위원은 여기에 더해 "투수 당사자에게도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요인이다. 내가 경기를 지배해 승리를 따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선수가 자신의 능력에 믿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 정 위원 역시 '완투의 달인'이었다. 60경기에서 완투해 49완투승 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 완봉승으로만 통산 20승을 올려 선동열 전 KIA 감독(29승)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정 위원은 "당시에는 '내가 몇 이닝을 던져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눈앞의 한 타자, 한 타자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던지다 보니 완투를 하게 됐다"며 "힘 안배를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코치는 완투승에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제구력'을 꼽았다. "경기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제구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1~2회는 잘 던지지만 그걸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금세 제구가 왔다 갔다 하는 투수들도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최근 젊은 국내 투수들의 완투가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서도 "투수들이 확실히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구속이 엄청나게 빠른 선수들이 아닌데도 제구를 꾸준히 지키는 능력이 생기고 있다는 의미라 고무적"이라고 반겼다.
1회부터 9회까지 오직 '승리'만을 생각하며 홀로 마운드를 지키는 것, 완투승은 그사이 찾아오는 여러 고비를 무사히 넘긴 투수들에게 주어지는 훈장이다. 정 위원은 완투승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계속 공을 던지다 보면 체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낸 승리이니 값어치가 있다"며 "완주를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마라톤과 같다. 다만 마라톤이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면 투수는 살아 있는 타자를 계속 이겨 나가면서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