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보물 같은 신인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수원의 미래가 나쁘지 않은 이유다.
지난 25일 열린 수원과 강원 FC의 K리그 클래식(1부리그) 16라운드의 주인공은 유주안(19·수원)이었다. 만 스무 살이 되지 않은 그는 프로 데뷔전이었던 이날 선발로 나서 1득점 1도움을 올리며 최우수선수(MVP)급 활약을 펼쳤다.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패기와 문전 앞 재치, 최전방 스트라이커 조나탄(27)과의 완벽한 호흡은 20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날 경기에 앞서 만난 서정원(47) 수원 감독은 유주안의 소개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서 감독은 "유주안은 매탄고 출신으로 R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최근 있었던 안산 그리너스전에서는 해트 트릭을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수원 유스팀에 대한 '깨알 자랑'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팀에 유주안 같은 유스팀 출신 선수들이 많다. 이런 어린 선수들이 1군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수원 유스팀을 소개한 서 감독은 "축구에 '베스트'라는 것은 없다. 기량이 좋은 선수를 쓰지 않고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 얘기는 실력만 있다면 어린 선수라도 적극적으로 기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수원은 매탄고 출신 '신인 대어'를 매년 낚고 있다. 유스팀 출신으로 1군에 들어와 득점을 신고한 선수만 해도 7명에 이른다. 2014년 8월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데뷔골을 터뜨린 권창훈(23·디종 FCO)을 시작으로 구자룡(25)과 김건희(22), 김종우(24)까지 면면이 화려하다. 2017년판 '신 앙팡 테리블'로 떠오른 유주안은 매탄고 출신으로는 역대 처음으로 데뷔전에서 골과 도움까지 올린 첫 주인공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부분이 매탄고의 '에이스'를 뜻하는 10번을 달고 뛰었다는 점이다.
수원의 든든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김종우는 "매탄고 10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학교 자체가 고교 최고의 팀이라는 자부심이 있는데 그 팀의 10번이니까 오죽하겠나. 10번은 자부심이자 나를 겸손하게 하는 숫자"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유주안 역시 "우리팀에서 등번호 10번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매탄고의 발전은 '외부 충원보다는 키워서 쓴다'는 수원 구단 철학이 만들어 낸 결과다. 수원은 구단에 투입하던 막대한 자금을 점차 줄여 나가고 있다. 한때 리그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으나 서 감독이 부임한 이후부터는 '키워 쓰는 시스템'을 안착시키고 있다. 당연히 구단의 관심도 '요람'인 매탄고에 집중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매탄고 측은 "우리 학교 축구부는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단과 운영 프로그램까지 블루윙즈 축구단이 완전한 관리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 구단의 시스템을 이식한 매탄고 출신들이 두각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김건희는 "매탄고는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최고 수준이다. 선후배 간 사이도 돈독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원 유스팀의 성공 신화는 향후에도 계속될 수 있을 전망이다. '선수의 기량만 좋다면 신인도 쓴다'는 사령탑 철학과 구단의 키워 쓰는 문화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수원이 배출한 스타이자 '앙팡 테리블' 고종수(39) 수원 코치는 "몇 년 전부터 경험이 적은 유스 출신 선수들을 키워 쓰고 있다. 초기에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고 단단해지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자룡과 이종성(이상 25) 같은 선수들이 팀에 자리를 잡으면서 점차 팀 전력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수원의 유스팀과 같은 성공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 축구는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 '맹주'로 불렸다. 그러나 2017년 들어 판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A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조별예선 탈락 문턱에 서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 나선 U-20(20세 이하) 대표팀 역시 세계 강호 포르투갈이나 잉글랜드와의 대결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이는 K리그 소속 각 클럽들이 재능 있는 유망주를 발굴하고 실전 경기에 투입해 진짜 실력을 키우지 못한 탓이 크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우리나라 유스팀 중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면서 효과를 보고 있는 곳은 수원 삼성과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제주 유나이티드 정도"라면서 "하지만 유스팀 출신 선수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프로에 입단해서도 1부리그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하면서 실력을 쌓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K리그가 제도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키우고 리그에서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언제까지 '어린 선수는 실력이 없어서 못 쓴다'는 말을 할 것인가. 신인급 선수들이 실전 경기에 뛰지 못하는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축구는 요원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