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동주'가 그랬고 '박열'이 그렇다. 여주인공조차 낯선 인물을 파격 발탁한 만큼 주변 인물들 역시 익숙한 듯 신선하다.
좋은 영화는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가치가 빛난다. 6년 전 영화계를 들썩였던 '파수꾼(윤성현 감독)'의 주역들은 이준익 감독의 부름 아래 또 한 번 날개를 펼쳤다. 배제기(32)도'파수꾼'의 수혜를 다시 입은 1인이다.
생애 첫 오디션을 단번에 합격하면서 얻은 기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기를 하지 않았으면 뭘 했을까 싶을 정도로 연기를 사랑하고 애정하는 배우다. 주·조연, 분량은 상관없다. 연기만 할 수 있으면 그저 행복하다.
풍기는 이미지는 거칠지만 싱긋 미소짓는 웃음이 해맑다. 허세가 아닌 진중함으로 똘똘 뭉쳤다. 뭘 맡겨도 잘 해낼 것 같은 믿음직스러움이 돋보인다. '박열'에 이어 '군함도'까지. 배제기의 여름은 이미 뜨겁다. - '박열'이 기분좋은 흥행 성적을 받았다. "감독님, 배우들과 자주 만나 자축하고 있다. 행복하다. 열심히 찍었는데 괄목할만한 성적이 나오니까 좋다. 앞으로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봐 주셨으면 좋겠는데 외국에서 거미 영웅이 오는 바람에.(웃음) 거미 영웅과 조선의 영웅이 같이 잘 됐으면 좋겠다."
- '박열'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정확하게 표현하면 감독님께서 (이)제훈이 형을 캐스팅 하기 위해 다시 '파수꾼'을 보셨는데 거기에 내가 나오니까 나에게도 책을 주셨다."
- '파수꾼'은 여전히 영향력이 강하다. "이준익 감독님과도 인연이 계속 닿는 것 같다. '동주'에는 박정민이 나왔고, '박열'에는 제훈이 형과 내가 나왔고. 좋은 영화는 아무래도 계속 회자되는 것 같다."
-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어땠나. "'꿈에 그리던 이준익 감독님을 만나는구나' 싶었다. 너무 유명한 감독님이라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정민이에게 따로 또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말 좋은 감독님이고 배우들 이야기도 잘 들어 주신다고. 기대에 차 있는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완성도가 너무 높아 더 기대를 하게 됐다."- 첫 촬영도 설렜겠다. "내 기억으로는 사회주의 오뎅집 안에 있었던 것 같다. 박열이 인력거를 끌고 오는 장면이라 그 안쪽까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행복했다. 부담도 덜했다. '아, 이곳 현장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를 파악하기에도 좋았다. 무엇보다 배우들끼리 이미 너무 친한 관계였고 사전에 친해질 수 있는 계기들이 있어 현장에 놀러 간다는 느낌이 컸다."
- 원래 친분이 있었던 것인가. "제훈이 형은 '파수꾼'으로 데뷔를 같이 했던 절친이고, 민진웅 배우는 사석에서 본 적이 있다. 백수장 형은 한예종 단편영화를 함께 찍었고, 최정원이라는 배우는 예전부터 얼굴을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다들 한 다리만 건너면 어느 정도 다 아는 사이였다.(웃음)"
- 회식도 자주 했겠다. "거의 매일 했다. 우리가 영화에서 불령사라는 조직으로 움직이지 않나. 현장에서는 '술령사'라고 불렀다. 하하. 서로 너무 친하니까 자주 만나 연기 이야기도 하고, 캐릭터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촬영 중에도 끝나면 산책하고 맥주 마시면서 꼭 함꼐 다녔다. 한 명도 빠짐없이 같이 행동하려 했고, 지금도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은 만난다."
- 남자들끼리 모여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나. "본질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차기작에 대한 논의도 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진짜 동지가 됐다. 불령사 멤버는 아니지만 다테마스 검사로 나온 김준한 배우까지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면 그렇지만 다들 '말술'이다. 못 마시는 친구가 없다."- 이제훈 배우는 술을 잘 못하는걸로 아는데. "맞다. 제훈이 형은 잘 못 마신다. 술자리에서도 잘 안 마시고 사적으로 만나도 커피 마시고, 산책 하고, 영화,보고, 맛집 찾아 다니고 그런다.(웃음)"
- 흔히 말하는 훈녀라이프 아닌가? "으하하. 형은 참 올바른 사람이다. '파수꾼' 때나 '박열' 때나 인간적으로는 변한게 하나도 없다. 나랑 정민이가 동생이니까 챙겨주기도 잘 챙겨주고 고민도 잘 들어준다. 외국 다녀오면 꼭 선물도 주고.(웃음)"
- 배우로서는 변한 지점이 있다는 뜻인가. "조금 성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내가 형의 연기력 자체를 논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의 애티튜드도 달라졌고, 시야가 넓어진 것 같기도 하더라. 확실히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처세들이 유려하다. '박열'을 하면서 진심으로 형을 존경하게 됐다. 순간 집중력이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파수꾼' 때 이미 알았는데, '박열'을 찍으면서는 순간적으로 뿜는 에너지까지 대단하더라. 형이기 전 배우로서 존경심이 생겼다.
- 본인은 얼마나 어떻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나. "'파수꾼' 때와 비교하자면 기본적으로 카메라 워킹을 알게 됐다. 그 땐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연기했다.(웃음) 그런 면에서 기술적인 부분은 조금 발전한 것 같다. 다만 아직 감성적인 부분을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는 많이 맡지 못해서 그런 쪽은 여전히 부족하다. 좋은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