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 8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고졸 입단 3년 차던 이승엽(당시 21세·현 41세)은 '미스터 올스타(MVP)'를 목전에 두고 아쉽게 놓쳤다. 대신 감투상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이승엽이 마지막으로 대구에서 경험한 올스타전 무대의 추억이다.
이승엽은 당시 동군(삼성·OB·롯데·쌍방울) 1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0-3으로 뒤진 3회 2사 후 좌전 2루타를 뽑아냈다. 4-4 동점이던 7회에는 바뀐 투수 구대성의 공을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쳤다. 이 홈런으로 이승엽이 소속된 동군이 5-4로 앞섰다. 4타수 2안타. 그것도 홈런과 2루타로 모두 장타였다. 동군이 이긴다면 MVP는 당연히 이승엽의 차지였다.
하지만 동군은 9회초 결승점을 내줬다. 중견수 정수근이 실책으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충분히 잡을 수 있던 타구를 놓친 것이 빌미가 됐다. 결국 동군이 5-6으로 재역전패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미스터 올스타'는 승리팀에서 배출되는 경우가 많다. 9회초 2사 만루에서 2타점 결승타를 날린 유지현이 기자단 투표에서 총 51표 중 34표를 얻어 MVP로 선정됐다. 이승엽은 두 번째로 많은 10표를 획득했다. 생애 첫 출장한 올스타전에서 아쉽게도 MVP 대신 감투상에 만족해야 했다.
이승엽은 20년 전을 추억을 더듬으며 "당시 MVP 시동을 다 걸어 놨다. 가속페달만 밟으면 되는데 유지현 코치한테 뺏겼다"고 웃었다. 그는 "정수근이 잡을 수 있는 공을 놓쳤다. 가만히 놔두지 않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이승엽과 정수근은 팀은 다르지만 1995년 프로 입단 동기다. 이승엽은 몇 해 전까지 "(정)수근이를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면 수근이가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성공한 선수가 됐다'고 농담하곤 했다"고 말했다. 잠시 추억에 잠긴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2017년, 이승엽은 대구에서 개최되는 올스타전에 20년 만에 출장한다. 오는 1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2017 올스타전 베스트12에 뽑혔다. 드림 올스타(두산·SK·롯데·삼성·kt) 지명타자 부문에서 가장 높은 총점(54.14점)을 얻었다. 팬 투표(104만3970표)와 선수단 투표(196점) 모두 압도적인 1위였다. KBO 리그에서 15시즌째를 맞고 있는 그에게는 개인 통산 11번째 올스타 선정이다. 또 올스타전이 열리는 7월 15일 기준으로 그의 나이는 40세10개월27일이 된다. 2000년 김용수(당시 LG, 40세2개월21일)를 넘어 최고령 올스타 베스트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올스타전은 더 특별하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에겐 마지막 올스타전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마지막 시즌에 팬들께서 올스타로 뽑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뿐 아니다. 20년 만에 대구 홈 올스타전에 나서게 됐다. 2010년 대구에서 두 번째로 올스타전이 열렸지만 이승엽은 일본 요미우리 소속이라 참가하지 못했다. 2013년에는 삼성의 제2구장인 포항에서 올스타전이 열렸다.
올스타전은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잠시 벗어나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만드는 '축제의 장'이다. 이승엽은 가족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다. 그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올스타전인 데다 대구에서 올스타전이 열리니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계획이다. 더그아웃과 라커 룸도 한 번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포항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큰 아들 은혁(당시 8세)군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결승에서 6개의 대포를 때려 내 나지완(KIA·2개)을 꺾고 우승했다. 생애 첫 홈런 레이스 1위. 올스타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홈런 레이스에서 칠전팔기 끝에 환하게 웃었다. 이승엽이 공식 석상에 아들과 함께 나타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다. 아버지의 타구가 포물선을 그리며 외야로 날아가자 아들 은혁군은 물끄러미 쳐다보며 환호했다. 그는 당시 "예전에 좋았을 때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이번 홈런 레이스로 아빠가 최고의 선수였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빠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둘째 아들 은준군과 한여름 밤의 멋진 추억을 기대한다. 그는 "이제 둘째가 일곱 살이다. 4년 전 은혁이의 나이와 비슷하다"며 "이번에도 좋은 추억을 남겨 주고 싶다. 아이들을 위해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그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이승엽은 "올 시즌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단 한 번도 만원 관중(시즌 최다 관중은 6월 24일 한화전 2만1107명)을 기록한 적이 없다. 올스타전에서는 팬들의 발길로 꽉 들어찼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