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승엽(41)이 현역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 반환점은 이미 돌았다. 이제 그가 프로야구 선수로서 타석에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스스로도 매 경기, 매 타석이 소중하다. 그는 "남은 56경기가 내게는 정말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했다.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선수다. '홈런'의 역사를 되짚을 때 이승엽의 이름을 빼놓고는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역사에서도 그렇다. 그는 한국 야구에 '8회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선물한 주인공이다. 현역 선수면서 역대 최고의 타자. 마지막 시즌까지 녹슬지 않은 실력과 품위를 보여 주고 있어 더 놀랍다.
가장 빛나는 순간에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리 은퇴를 예고하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은 특히 그렇다. 이승엽 이전에 '예고 은퇴'를 해 낸 선수는 '캐넌 히터' 김재현(전 SK·현 SPOTV 해설위원)밖에 없다. 이승엽이 어려운 결정을 한 덕분에 전국의 야구팬들은 귀한 기회를 얻었다. 이승엽이라는 전설적 선수의 모든 '마지막'을 미리 알고, 지켜보고, 기억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요즘 메이저리그에는 '은퇴 투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은퇴를 앞둔 선수가 마지막 시즌을 치르는 동안 홈은 물론이고 모든 원정지의 팬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 박수를 받는 풍경이다.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장면. 물론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영광은 아니다.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칼 립켄 주니어, 데이비드 오티스, 치퍼 존스 같은 레전드 선수에게만 허락됐다.
1년 내내 화제를 낳는다. 뉴욕 양키스의 '영원한 캡틴' 데릭 지터가 2014년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를 때, 휴스턴 구단은 지터의 등번호 2번이 새겨진 카우보이 부츠와 모자, 골프 클럽을 선물했다. 양키스의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마지막 시즌인 2013년 미네소타에서 부러진 야구 배트로 만들어진 의자를 선물받았다. 세계 최고의 구종으로 꼽히던 리베라의 컷패스트볼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던 수많은 배트들을 상징했다. 두 선수가 펜웨이파크에서 치른 마지막 원정경기에서는 평생 양키스에 이를 갈며 살아온 숙적 보스턴의 극성 팬들조차 기립박수로 맞이했다.
이승엽 역시 KBO 리그 최초 '은퇴 투어'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사실 투어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 1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KBO 올스타전이 출발점이다. 현역 마지막 시즌까지 올스타 베스트12로 선정된 '국민 타자'는 별들의 잔치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로 추앙받았다. 가족, 동료 선수들, 팬들과 어울려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후반기에는 그동안 그가 수많은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 보낸 전국의 야구장과 특별한 작별 인사를 나눌 차례다. 이미 KBO와 9개 구단이 큰 틀에서 합의를 마쳤고, 세부 내용은 마지막 삼성전에 앞서 각 구단이 확정하기로 했다.
삼성이 앞으로 우천 취소 없이 일정표대로 경기를 소화한다면, 이승엽은 8월부터 각 지역별 마지막 원정길에 오른다. 8월 11일 한화전이 대전구장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가 되고, 18일에는 수원, 23일에는 고척스카이돔에서 각각 마지막으로 타석에 서게 된다. 9월에는 인천 SK행복드림구장(1일), 잠실구장(3일·두산전), 사직구장(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10일), 마산구장(15일)에서 고별전이 예정돼 있다. 앞서 비로 취소된 잠실 LG전만 17일 이후로 편성된다.
리베라가 은퇴를 앞둔 2013년 양키스의 홈경기와 원정경기 관중석은 매번 꽉 들어찼다. 리베라의 마지막 투구와 작별 인사를 직접 보기 위해 미국 전역의 야구팬들이 몰려들었다. 이승엽의 '고별식' 릴레이 역시 그가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팬들의 발길을 끌어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