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브랜든 그레이스(29·남아공)가 남자 골프 메이저 대회의 새 역사를 쓴 주인공이다. 그레이스는 23일(한국시간) 잉글랜드 사우스포트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146회 디 오픈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낚아 내며 62타를 쳐 메이저 대회 18홀 최저타 신기록을 세웠다. 그레이스는 이날 8타를 줄인 덕분에 중간 합계 4언더파로 단숨에 공동 5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종전까지 세계 남자 골프 메이저 대회 18홀 최저타는 1973년 조니 밀러(미국)가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작성한 63타였다. 밀러를 포함해 헨릭 스텐손(스웨덴),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 29명이 31차례 63타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57년 동안 깨지지 않던 이 기록은 이날 그레이스가 어메이징한 경기력으로 '마의 63타' 벽을 무너뜨리며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로열 버크데일의 종전 코스레코드도 1타 경신했다.
그레이스는 “18번홀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신기록인지도 알지 못했다”며 “전반에 5언더파를 기록한 것도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후반에 2~3타를 더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마음먹었는데 62타 역대 최저타 기록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감격해했다.
그레이스는 전반에 버디 5개를 낚으며 순항했다. 후반 들어 4개 홀에서 연속 파세이브를 하다, 14번홀에서 이날 6번째 버디를 솎아 냈다. 그리고 16번에서 9m 버디를 집어넣으며 환호했다. 17번홀(파5)에서는 239야드 남은 거리에서 3번 아이언으로 2온에 성공하며 갤러리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냈다. 8m 이글 퍼트를 놓쳤지만 가볍게 버디를 추가하며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마지막 18번홀에서 위기를 맞았다. 세컨드 샷이 길게 떨어져 볼이 그린 뒤로 조금 넘어갔다. 그래도 핀까지는 18m나 됐다. 퍼터로 친 볼은 핀에 정교하게 잘 붙였다. 그레이스는 그렇게 마지막 홀에서 60cm 파 퍼트를 집어넣어 대기록을 완성했다.
그는 “마지막 홀에서 보기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캐디가 다가와서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고 말해 줬는데 무슨 얘기를 하냐고 오히려 되물었을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세계 랭킹 35위인 그레이스는 남아공을 대표하는 선수다. 2015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해 한국 골프 팬들에게도 낯이 익다. 당시 그는 5전 전승을 거두며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1승만 수확했지만 유로피언투어에서는 7승을 거두고 있다. 올해는 우승컵이 없다. 그의 메이저 최고 성적표는 2015년 PGA챔피언십 3위였다. 3라운드까지 디 오픈의 단독 선두는 조던 스피스(미국·11언더파)다. 그는 로열 버크데일에서 최초로 1~3라운드 연속 60대(65-69-65) 타수를 적어 내며 폭풍 질주를 이어 가고 있다.
한편 남녀 골프 통틀어 메이저 대회 18홀 최저타 기록은 김효주(22·롯데)가 가지고 있다. 김효주는 2014년 에비앙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61타를 작성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우승까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