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지난 6월13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자심 빈 하마드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A조 한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카타르에게 세 번째 골을 헌납한 한국의 기성용을 비롯한 선수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세상에 '무조건' 되는 일은 없다.
조건을 갖춰야 일이 완성된다. 이를 위해 많은 준비와 노력 그리고 열정이 동반돼야 한다.
"한국은 무조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지금 한국 축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대표팀을 향해 모두가 이처럼 '무조건'을 외치고 있다. 물론 희망을 제시하는 목소리다. 그렇지만 좋은 현상은 아니다. 대표팀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래서 월드컵 본선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당연함'이다. 매끼 식사를 하듯 익숙한 일이 됐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선수 생각은 달라야 한다. 그런데 현재 대표팀 선수들의 생각도 국민과 비슷한 것 같다. 적당히 뛰어도, 100% 소진하지 않아도 월드컵 본선에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왜? 한국은 8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저력이 있으니까. 8회 연속이라는 익숙함이 9회 연속도 보장해 줄 거니까.
착각이다.
월드컵에 진출한 8번의 선배들은 달랐다. '무조건'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으로 조건을 충족시켰기에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최종예선은 항상 힘들었다. 그렇지만 상대가 강한 만큼 확실히 준비했다.
또 절박함을 품고 경기를 뛰었다. 연속성이 아닌 지금 당장 월드컵 본선이 중요했다. 그러자 결실이 찾아온 것이다. 저력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선배들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선 진출이라는 장밋빛 꿈에 젖는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지금 선수들이 월드컵 본선에 대한 절박함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낀다. 아시아권 팀들이 한국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면서 강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최종예선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선수들의 의지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남은 이란과 우즈베키스탄과 2경기는 다른 정신력을 품었으면 한다.
[사진=신태용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6일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축구회관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술과 전략이 아니다. 멘틀이다. 감독 교체는 어느 정도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경기에 뛰는 이는 선수다. 신태용 감독이 많은 선수들을 직접 관전하면서 파악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새롭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자리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손흥민이 골키퍼를 보지는 않을 것 아닌가. 핵심 선수들은 다 그대로 있다. 새로운 대표팀이 아니라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표팀이다. 따라서 전술적 변화보다 선수들의 마인드 변화가 경기력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축구는 뛰는 스포츠다. 약체라고 해도 상대가 10발을 뛸 때 9발 이상 뛰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는 경기다. 아시아 팀을 상대로 그들이 10발을 뛸 때 한국이 11발을 뛴다면 승리가 확실하다.
한국 선수들은 지금 '기술의 덫'에 걸려 있다. 기술은 아시아 정상급이다. 그래서 기술을 맹신한다. 기술로 아시아 팀을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이것 역시 착각이다. 손흥민도 상대 2명이 집중 마크하면 막힌다. 11명 모두가 손흥민이 아닌 이상 아시아 팀을 기술로 쉽게 이길 수는 없다. 팀 전체가 더 많이 뛰어야 승리할 수 있다.
지금 대표팀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 그 나사가 바로 뛰지 않는 것이다. 많이 뛰지 않고 기술로 승부하려고 하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몸으로 이겨 내야 할 때다.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한국이 아시아 최강자라는 자존심은 잠시 버려야 한다. 오히려 상대가 한국보다 강한 팀이라고 생각해 악착같이 뛰는 것이 더 낫다. 지금은 상대보다 '예쁜 축구'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월드컵 본선'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코칭스태프가 이런 부분을 인식시켜 주기를 바란다.
선수들 탓만 할 수도 없다. 대표팀 주변환경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선수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이제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외부에서 선수들을 향한 자극적인 말도 삼가야 한다. 선수들 스스로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다.
'앞만 보라.'
대표팀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동안 대표팀이 너무 어지러워 선수들은 옆도 보고 뒤도 봤다. 축구만 보지 못했다. 앞에 1m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전진하면 월드컵 본선이라는 고지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