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소신이 뚜렷하다. '군함도' 논란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영화 '군함도(류승완 감독)' 개봉 8일 만인 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한 날이었다. 흥행의 단맛과 논란의 쓴맛 모두 보고 있는 류승완 감독은 누적 관객 수 1300만 명을 동원한 '베테랑(2015)' 때보다 많이 핼쑥해져 보였다. 주름은 깊어졌고, 얼굴살이 쏙 빠졌다. "요즘 (살 빠진 것 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어요. 그게 아니라 운동을 하고 있어요. 인보디 측정을 했더니 마른 비만으로 나와서 체지방을 빼고 근육량을 늘리고 있어요. 그래서 얼굴살이 빠진 거예요. 컨디션과 건강은 '짱'이에요"라며 씩 웃었다. "그렇다면, 궁금한 걸 다 물어 보겠다"라고 하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 '군함도'를 자평해 달라.
"내가 그간 다루지 못했던 시대와 인물을 다루면서 밸런스를 유지해야 했던 영화였다. 실제 역사를 고증하면서 동시에 영화 속 인물과 사건, 상황들을 그에 맞게 만들어 내야 했고, 밸런스를 맞춰야 했다. 기술 시사를 하고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은 모두 성취감이 컸다.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방향성에 맞는 영화를 완성했다고 자부한다."
- 어떤 방향성을 말하는 건가.
"영화 속 인물들과 사건, 상황들이 실제로 가능했을 법하게 고증을 통해 완성하는 것, 그리고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기술적으로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필요했다. 섬을 재현하는 데 있어 미술팀과 CG팀이 많은 노력을 했다. 바다의 질감, 사운드 부분 등 기술적으로 '이런 수위와 완성도의 영화를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생각했던 방향대로 구현해 냈고 완성해서 이를 통해 얻은 성취감이 있다."
- 군함도의 역사를 영화에서 다루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이 영화를 처음 시작한 건 2013년이었다. 김정민 필름케이 대표와 시나리오 초고를 쓴 신경일 작가가 군함도 사진 한 장을 보여 줬다. 군함도의 역사에 대해 그동안 몰랐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애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엄청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군함도가 가진 특수성, 당시 섬에서 (조선인들이) 자유롭게 출입을 못 했다는 점 등이 엄청 큰 자극과 인상을 줬다. 처음 목표는 간단했다. 군함도의 숨겨진 역사를 많이 알리고 싶었다."
- 영화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대규모 탈출극을 그리지만, 실제로 징용자들은 탈출에 성공한 게 아니라 나가사키 원폭 현장을 정리하는 역할로 보내져 희생당했다. 대규모 탈출극으로 그린 이유는 뭔가.
"증언집과 전문가 자문을 통해 실제로 개별적으로 탈출 시도가 있었고, 최대 40여 명이 집단 탈출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확인했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징용자들이 정치적인 해방은 둘째치고 조금이라도 덜 두들겨 맞고 마른 잠자리에서 자길 바랐다는 증언집을 봤다. 또 실제로 징용자들이 부산항을 통해 입항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조선인들만 탄 배가 침몰했고 결국 군함도 역사의 한 축이자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들의 염원을 이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서라도 이들이 군함도에서 살아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줄 순 없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대규모 탈출극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었다."
- 스크린 독과점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스크린 수 2000개가 넘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히 밝히는 건 난 단 한 번도 독과점에 대해 찬성한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이 논란과 혼란이 끝나길 바란다. 내 영화가 스크린 독과점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건 단 한 번도 부딪혀 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번 스크린 독과점으로 감독이 비난받은 것에 주위 감독들도 화가 나 있다. 감독과 제작사는 배급 시스템이 어떤지 모른다. 극장에 영화를 거는 극장 사람들의 얼굴도 모른다. 언론시사회가 열리는 날 바로 옆에선 배급시사회가 진행된다. 그때 영화를 본 배급사에서 결정하는 거다. 감독도 개봉하는 날 스크린 수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전엔 전혀 모른다. 이번 논란으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길 바란다. 한 영화가 일정 수치 이상 스크린을 독점하지 못한다는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 개봉 8일 만에 500만 명을 돌파했다. 최단 속도 혹은 신기록 타이틀로 흥행하는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그런 것(스코어)에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하는 사람이다. 투자한 분들에겐 그런 숫자가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스코어보다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더 중요하다."
-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았다. 친일파 조선인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 왜곡 논란에 식민사관 조장 영화라는 의견까지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다양한 의견이 있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식민사관 조장 영화라는 주장은 황당하다. 영화의 최후가 어떤지를 보면 영화에 담아낸 시선이 명확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밀정' '덕혜옹주' '암살' '동주' '박열' 등 최근 나온 영화만 봐도 그때 당시의 범죄와 악행을 얘기하지만 동시에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자는 성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으로 나눠 이분법적으로 만드는 건 너무 쉬운 거고, (영화를 만드는 데)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런 밸런스까지 맞추고 싶지 않았다. 내 전작 '짝패'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생각하는 악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존재다. '군함도'는 944~1945년이 배경이다. 이미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식민 통치를 받아 온 조선인들에겐 진짜 악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는 존재이지 않았을까. 그 속에서 기생하는 친일을 다루지 않으면 이건 반쪽짜리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이제 영화가 개봉됐으니 더 솔직하게 말해 보겠다.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만약 영화에서 친일을 처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면, 관객들의 반응이 어땠을 것 같나. 출연한 배우 중에 누가 반전의 키를 쥔 인물이고 친일인지를 찾는 데에만 집중했을 거다. 적어도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진 그 부분을 숨겨 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군함도의 배경을 인지하기도 전에 친일 캐릭터를 찾을 것 같았고, 그럼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소재의 특수성 때문에 어느 정도의 논란은 예상했을 것 같다.
"너무 예상을 뛰어넘는 논쟁으로 불거져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건강해질 수 있는 논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치료해야 하는지 알게 됐고, 숨어 있던 암 덩어리를 찾은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대중적인 매체다. 파급력도 크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나 영화를 보고 아무 말이나 하기 좋다. 영화 '군함도'로 불거진 논란들이 결과적으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더 군함도에 대해 얘기하고 곱씹어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나. 군함도를 영화에서 다룬 건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이렇게 해서라도 시작돼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더 관심을 갖고, 숨겨진 부분을 찾아보고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일본의 반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 보수 세력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한 나라의 장관까지 나서서 내가 한 말을 부분적으로 짜깁기하고 왜곡 해석할 줄은 몰랐다. 사실 2015년 12월 몇몇 크루들과 군함도에 직접 취재하러 갔을 때 일본에서 어떤 압력이 있을까 봐 조용히 갔고, 일반 관광객과 같은 루트로 가서 군함도를 보고 왔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에게 군함도 역사 관련 자문을 해 준 단체에 일본 정부 기관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가 일본에 다녀간 것에 대해 물어봤다더라. 또 영화 캐스팅할 때 일본 배우들은 에이전시를 통해서 아예 접촉이 안 됐고 대본 전달조차 안 돼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본에서 받아들이는 태도나 반응이) 심각하겠다는 예상은 했었다."
- 송중기·소지섭 등 한류 스타들을 캐스팅했다. 출연을 제안하면서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조심스러울 건 없었다. 제안해 보고 안 하면 말고 식이었으니까.(웃음) 내가 붙잡아 두고 이걸 꼭 해야 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결국 선택은 배우들이 했으니까. 본인들이 받을 불이익이 뻔한데도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송중기는 대본을 보자마자 출연하고자 하는 이유가 명확했다. 첫 번째는 대본이 재밌어서였고, 두 번째는 출연 작품을 결정하는 것조차 눈치 보면서 하고 싶은 것도 못 하면 이 일을 왜 하겠냐는 것이었다."
- 해명하고 싶다거나 억울한 부분이 있나.
"억울한 건 없다. 영화를 보고 각자 다른 의견을 내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난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담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 주시는 분도 있고 또 다르게 해석해 주시는 분들도 있는 것뿐이다. 영화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건 관객들의 고유한 권리고 자유라, 해명하고 싶거나 억울할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