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호주·일본·이란이 이끌던 '빅4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이 6일(한국시간) 일제히 벌어진 A·B조 최종 10차전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은 '이변의 연속'으로 요약된다.
최종예선 참가국 10개국 중 유일하게 무패를 질주한 이란(승점 22·4승6무)을 제외한 빅4의 나머지 팀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란은 압도적인 전력을 앞세워 A조 1위로 일찌감치 러시아행을 확정했다.
◇ 한국 제자리걸음, 시리아·중국 약진
한국은 최종예선 막판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을 경질하는 진통 끝에 가까스로 A조 2위에 올랐다. 한국은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매 경기 힘겨운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경기까지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했던 한국은 이란의 '도움'으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과 10차전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는 바람에 자력 진출이 무산됐지만, 같은 시간 이란이 총공세를 펼친 시리아를 상대로 2-2로 버텨 줘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승점 15)은 승점 2점 차로 시리아(승점 13·3승4무3패)와 우즈벡(승점 13·4승5패1무)을 제쳤다.
A조가 마지막까지 혼전 양상을 보인 데는 기존 아시아 축구의 변방으로 불리던 국가들의 가파른 성장세도 한몫했다. 그중에서도 시리아의 약진은 이번 최종예선 최대 이슈였다. 내전 중인 시리아는 안방에서 홈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불리함 속에서도 3위로 사상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다. 특출 난 스타는 없지만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탄탄한 조직력이 시리아의 강점이었다는 평가다.
만년 '들러리'로 꼽히던 중국 역시 아시아 축구판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최종예선 첫 4경기에서 1무3패의 부진을 보인 중국은 A조에서 가장 먼저 낙오할 팀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가오 홍보(51·중국) 감독을 경질하고 영입한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69·이탈리아)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200억원 이상을 주고 리피 감독을 데려온 중국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이후 6경기에서 단 1패(3승2무)만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적극적인 투자 속에 능력 있는 지도자가 가세해 시너지를 낸 것이다. 리피 감독 체제의 중국은 지난 3월 한국을 상대로 1-0승을 거두며 지긋지긋한 '공한증'에서도 벗어났다.
막판 스퍼트를 올린 중국은 본선 직행 마지노선인 2위 한국과 불과 승점 3점 차인 승점 12(3승3무4패·4위)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지난 6월 한국을 3-2로 잡아낸 카타르 역시 자국에서는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전력을 끌어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 챔피언 호주 몰락, 일본·사우디도 하락세
B조는 독주하는 팀 하나 없이 막판까지 대혼전이었다. 2015년 아시안컵 우승에 빛나는 호주가 부진을 거듭하면서 당초 호주·일본의 2강 체제가 전망됐던 B조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여전히 노장 골잡이 팀 케이힐(38·멜버른 시티)을 앞세운 호주는 결정력 부족으로 잡아야 할 경기를 비기며 화근을 자초했다.
결국 호주(승점 19·5승4무1패)는 일본(승점 20·6승2무2패)과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승점 19·6승1무3패)에 이어 B조 3위로 밀려나 월드컵 직행 기회를 놓치는 수모를 당했다. 이제 호주는 A조 3위 시리아와 플레이오프를 거친 뒤 북중미 4위와 재차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AFC)에 편입한 호주는 2010년과 2014년까지 한 번도 월드컵 진출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의 부활은 돋보였다. 2006 독일월드컵 본선 이후 국제 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사우디는 2015년 명장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65·네덜란드) 감독 영입으로 다시 강자의 면모를 되찾았다. 판 마바이크 감독은 당초 한국 축구대표팀이 영입하려던 인물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판 마바이크의 대안이었다. 판 마바이크 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방식으로 사우디 전력을 재정비하고 끈끈한 팀으로 만들었다.
화끈한 공격의 팀으로 변모한 사우디는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아랍에미리트(UAE)와 이라크가 만만치 않은 실력을 유지하면서 기존 아시아 무대를 호령한 호주와 일본의 입지는 한껏 좁아졌다는 평가다.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는 이번 아시아 최종예선을 보도하면서 "한국·일본·이란·사우디가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최종예선에서 중국과 시리아는 희망을 봤다. 반면 호주는 막강한 공격력을 보유하고도 본선행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