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이마트에 이어 롯데마트까지 중국 시장을 떠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핵 문제와 맞물려 중국과의 사드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중국 사업 철수가 확산되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결국 백기 든 한국의 대형마트들
17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최근 10년간 공들인 중국 시장에서 결국 손을 떼기로 했다. 현재 매각 주관사로 골드만삭스를 선정하고 중국 내 매장의 처분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이르면 내달 말 본 계약을 목표로 중국 내 전체 매장의 처분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중국 내 점포가 철수작업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라며 "상황에 따라 일부 매장만 매각할 수 있지만 전 매장을 매각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롯데의 이번 결정은 국내 사드 부지(성주골프장) 제공 이후 중국에서의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롯데마트 중국법인의 올 2분기 매출액은 21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2840억원)보다 90% 이상 급락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 해외부문 영업손실은 550억원이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에서 영업이익이 난 것을 감안하면 중국에서만 550억원 이상 적자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연간 1조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된다.
이에 롯데마트는 지난 3월 3600억원 규모 자금을 긴급 수혈한 데 이어 최근 34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영업 지속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최근 북핵 도발에 따른 우리 정부의 사드 추가 배치 소식이 전해지자,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을 붓지 않기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시장을 떠나는 것은 롯데만이 아니다.
롯데에 앞서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도 이미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이마트는 1997년 중국에 진출해 한때 현지 매장이 30개에 육박했지만, 적자가 쌓이면서 철수 수순을 밟아왔다. 수년간 구조조정을 지속해 현재 매장은 6곳만 남았으며, 연내 철수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이마트에 이어 롯데마트 마저 중국 철수를 결정하면서 국내 대형마트 두 곳이 연이어 중국에서 처참하게 물러나게 됐다"며 "국내 유통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닌 '무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등 한국 기업 '철수 위기감' 확산
문제는 중국 철수 현상이 단순히 유통 기업들에만 그치지 않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실제 화장품과 식품 등 소비재 기업들은 국내 사드 배치 이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매출 비중이 큰 아모레퍼시픽은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 줄었고, 중국 제과시장 2위에 올랐던 오리온은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 대비 64% 급감했다.
모든 공장을 중국에 두고 있는 농심 중국법인도 올 상반기 매출이 14% 감소한 1276억원에 그쳤다.
제조업 쪽도 고전을 면치 못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국내 재계 2위인 현대·기아차는 '제2의 롯데마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사드 보복 여파가 지속되면서 지난달 중국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39% 줄어든 7만6010대로 집계됐다.
업체별로는 현대차가 5만3008대로 작년 8월 8만2025대보다 35.4% 감소했고, 기아차도 같은 기간 4만2091대에서 2만3002대로 45.4% 감소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현대·기아차 중국 누적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7% 감소했다.
업계는 현대·기아차 중국 현지 생산시설의 총 생산능력은 265만대에 이르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올해 판매량은 130만대를 밑돌아 생산능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연말 실적이 130만대 아래에서 마감될 경우, 이는 올해 중국시장 판매량 목표 195만대를 33% 이상 밑도는 수준이다.
설상가상 현대차 납품업체들의 공급 중단으로 중국 현지 공장이 멈추는 일이 반복되고 있고, 중국 현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까지 가세하면서 현대·기아차가 중국에서 보복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철수 우려감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내 재계 2위인 현대·기아차도 사드의 직격탄에 휘청일 정도"라며 "우리 기업의 억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기업들이 이번 기회에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 등 해외 판로를 다변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