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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632. 오늘보다 행복한 내일은 없다
1970년대 중반 무렵 유명 잡지에서 일본 학자의 칼럼을 읽었다. 워낙 명문이라 지금도 머리에 또렷이 남아 있다. ‘오늘보다 행복한 내일은 없다.’ 그는 15세기 포르투갈의 역사학자가 했던 이 말을 언급하면서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포르투갈은 이사벨라 여왕 집권 시기였다. 포르투갈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국가는 막대한 경제적 수입으로 부강해졌다. 포르투갈은 스페인보다 더 강력한 국가로 성장해 유럽의 패권을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무렵 포르투갈의 한 역사학자는 ‘오늘보다 행복한 내일은 없다’는 말로 이를 견제했다.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지금 잠시 운이 좋아서 부강한 국가가 됐을 뿐 훗날 성장하게 될 영국과 네덜란드도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그 글을 읽었다면 포르투갈 집권층은 비웃었을지 모른다. 그 당시 영국과 네덜란드는 해양 국가로 아직 일어서기 전이었고 경쟁 상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포르투갈 학자의 경고대로 변두리 국가들의 성장은 심상치 않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으로 거듭났다.
왜 일본인 학자는 1970년대 중반 ‘오늘보다 행복한 내일은 없다’라는 말을 다시 쓰게 된 것일까. 그 시기 일본은 미국에 전쟁은 졌지만 경제로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막강한 부를 주체하지 못하고 록펠러센터 등 미국의 상징적인 빌딩들을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일본인 학자는 포르투갈을 예로 들면서 자칫 잘못하면 일본이 제2의 포르투갈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일본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대국이 됐지만 ‘오늘보다 행복한 내일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지금이 일본 역사상 가장 행복한 때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가 예측한 일본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중국은 잠이 깨지 않았을 뿐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할 것이며, 일본이 한국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앞서 있기는 하나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 세계 역사를 반추해 봤을 때 포르투갈처럼 스스로 경제 대국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경제 대란을 맞이하며 거침없이 추락했다. 일본도 예외라는 보장은 없다.
과연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1980년대 일본은 사상 초유의 버블경제를 맞이했다. 부동산은 대폭락하고 말았다. 일본의 자존심이던 전자 산업은 경쟁력을 잃어 갔다. 일본 재력가 소유의 미국 빌딩들은 속속 중국 재력가에게 넘어갔다. 중국은 무섭게 성장해 아시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됐으며, 한국의 문화 산업이 아시아를 강타하고 말았다.
‘오늘보다 행복한 내일은 없다’ 포르투갈의 역사학자와 일본의 학자가 진심을 다해 자국을 걱정했던 이 말을 오늘날 우리 국민들을 향해 하고 싶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고 있고, 일본은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오랜만에 맞은 긴 추석 연휴를 즐길 생각에 온 국민이 들떠 있다. 외국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는 포르투갈이나 일본보다 더 심한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는 마냥 환상적이지 않다. 아름다운 청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을 냉철히 판단하는 눈으로 보다 철저히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만이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