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성하는 '구해줘'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백발에 흰 옷, 흰 넥타이, 흰 구두 심지어 백색 분장까지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었다. 여기에 연기까지 더해지며 더할나위없는 '구선원 교주'가 됐다.
OCN '구해줘'는 지난 24일을 끝으로 종영했다. 결국 조성하(백정기)는 불에 타 죽는 결말을 맞이했다. 조성하는 "살려달라고 작가님께 말했는데 결국은 죽었다"며 결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어필했다.
조성하는 '구해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맹목적인 악인이었다. 소름돋는 이야기일 지 모르겠지만, 조성하가 연기한 백정기는 임상미 외엔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조성하는 "백정기는 임상미를 사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악인인 그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사랑이다. 이런 일은 있어서도 안된다"며 치를 떨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조성하는 취재진을 만나 '구해줘'에 대한 심도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 '구해줘'가 좋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인기를 실감하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다니다 보면 '교주님'이라며 따라오는 분들도 있다. 안수기도 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요청이 들어온다. 둘째 딸이 중2인데 내가 나오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해줘' 언제 하냐고 물어보더라. '친구들 단톡에서도 인기 있다고 얘기'를 하더라. 10대부터 50대까지 골고루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 기쁘다."
- 다시 검정색 머리로 돌아왔다.
"'병원선' 윤선주 작가님과의 인연으로 우정 출연하게 돼서 일단 검정색으로 염색했다. 현재 머리카락 상태는 심각하다. 16번 탈색하다 보니 다 끊어졌다. 두피는 화상입고 염증도 났다. 짧게 잘라내고 새 머리를 길러야 되는데 역할 때문에 나둔 상태다. 작가님이 수염도 그대로 두고, 살도 빼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보기 안 좋은 상태다.(웃음)
- 백발 설정이 대본엔 없었다고 하더라.
"대본엔 '백정기는 흰머리다. 흰옷을 입었다'는 설정은 하나 없었다. 대본을 읽고 나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유병언이었다. 세월호 사건 때 그 분의 동영상들을 봤다. 설교하는 장면과 흰머리에 흰양복을 입고 청중들을 압도하는 모습이 강하게 남았다. 언제 한 번 이 이미지를 써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에 걸맞는 악세사리도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동대문에 가서 직접 샀다."
-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도 하얘지더라.
"자기에 대한 고결함·순결함을 과시하기 위한 변형이었다."
- 쉬운 대본이 아니었다. 연기가 미숙했다면 웃음을 자아낼 법한 장면들도 있었는데.
"매번 난감하고 힘들었다. 처음에 예배신에서 암 시술을 하지 않나. 암 시술 장면 대사가 A4용지 5~6장 정도 됐다. 대사량 보다 힘들었던 건 어떻게 그럴듯하게 만드느냐 였다. 김상수 감독님이나 최상목 촬영 감독도 어떻게 찍어야 트릭을 잘 걸까를 고민했다. 예배 형식과 장풍 등 자칫하면 유치해질 수 있다. 드라마이지 '개그콘서트'가 아니지 않나. 그들의 영혼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다른 생각을 갖게 하고 이중적 코드를 이끌어야해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고민이 없었다면 '구해줘'가 이슈화되지 못했을 것 같다."
- 백정기는 맹목적인 악인인가.
"아마 백정기는 자신이 악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은 다 누구나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채워간다. 사회의 구성은 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백정기는 교단을 만들어서 신격화되고 그런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자신의 손끝 눈빛에 쓰러지는 모습을 봐야 행복한 사람이다. 욕구와 욕망 채우려고 투자를 하고 연구를 해 구선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자기는 정당한 노력을 해서 정당한 위치에 선 것으로 생각하는 망각자이고 망상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신병자다."
- 백정기가 임상미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소름 돋는다고 하는데, 백정기에게 임상미는 사랑이었을 거다.(웃음) 전략적으로 종교 단체를 운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동정녀 마리아처럼 역사적인 순고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모라는 직책을 만들었다. 백정기는 드라마 처음부터 끝가지 지고지순하게 순애보를 가지고 상미 하나만 바라봤다.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임상미 외엔 다른 여자를 터치하거나 눈빛을 보내거나 겁탈하는 장면이 없었다. 그 집념과 집착이 그만의 사랑법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백정기라는 악당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어울리지 않는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백정기의 사랑이 아니라 악행이다. 있어서도 안 된다." - 백정기에 대한 연민이 있나.
"백정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연민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서 남 사기치는 사람이 가장 싫다. 진실성이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 백정기 같은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아마 혼내줬을 것 같다. 다만 백정기를 백정기 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쉬운 역할도 아니고 선례가 있지도 않았다.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고 멋진 작업이었다."
- 고구마 전개라는 말이 있었다.
"대량으로 고구마를 심는 밭이었던 것 같다.(웃음) 좀더 시원하게 제공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감독님과 제작자들이 사이비에 대한 경험을 한 적이 있더라. 아픔을 느낀 적이 있다보니 그 아픔을 좀더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만약 사이비에 빠진 가족을 건져올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했겠나. 그 암담함은 표현할 수 없을 거다. 시원하게 그렸다면 그 아픔을 겼은 사람에겐 누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어두운 연기를 하다보면 지치거나 감정소모가 심하진 않나.
"캐릭터의 다운된 에너지를 맞추려면 내 에너지도 내려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이 똑같다고 느낀다. 10kg 뺐다가 찌우는 걸 반복하다 보면 몸이 역반응하면서 고장이 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깊은 연기를 하거다 감정의 유동이 많으면 체력 소모가 크고 정신적으로 지친다.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문제다. 너무 침울하고 다크한 작품은 힘들긴 하다."
- 그 감정선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끼치나.
"그정도 까진 아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하는 신인들은 그럴 수 있다. 평소에도 캐릭터처럼 살아야돼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취를 하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수는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웃음)"
- 실제 성격은 어떤가.
"좀 귀엽다.(웃음) 유쾌한 걸 좋아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와 함께 있는 순간엔 즐거웠으면 좋겠다. 어릴 때는 개그맨도 되고 싶기도 했다. 배삼룡 선생님 매일 따라했던 기억이 있다."
- 이미지가 너무 세서 차기작 캐스팅이 힘들 것 같은데.
"머리를 삐삐처럼 땋아서 더 쎈 걸로 해야하나.(웃음) 백정기를 넘는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게 희망인 것 같다. 또 지난 일들을 잊게 만드는 것도 도전이다. 어찌됐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 있다는 건 배우에겐 큰 복이다. '구해줘'의 백정기는 잊을 수 없는 인물로 남을 거다."
- '구해줘'는 조성하에게 어떤 작품이었나.
"또다른 희망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 나이 되면 할 수 있는 역할이 국한돼 있다. 아버지 아니면 경찰서장 등 한정적이다. 한국 영화 다양성이 없어서 여배우들이 설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40~50대 남자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또 어떤 역할로 보람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 '구해줘'로 아무도 하지 않았던 백정기를 맡으면서 새로운 작업에 동참할 수 있고 새로운 걸 창조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다양성 있는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 제작하시는 분들이나 작가님과 감독님들이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려서, 시청자들에게 다양성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구해줘'는 새로운 힘이 된 작품이다."
- 불에 타 죽었지만, 시즌2가 한다면 나갈 생각이 있나.
"몸과 마음이 탈진된 상태지만 다시 '구해줘' 전쟁터로 나가라고 하면 가다듬고 열심히 싸울의지가 있다. 정말 멋진 작품이다. 만약 2탄이 나온다면 더 이 세계를 면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작품 좋은 캐릭터들로 나왔으면 좋겠다. 시즌2에 합류한다면 한층 더 하얗게 하고 나가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