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는 이제 KBO 리그에서 필수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시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영광으로 꼽힌다.
한국시리즈는 정규시즌이나 다른 포스트시즌 시리즈와 달리 KBO가 직접 시구자를 선정하고 섭외한다.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그 시기 가장 화제가 된 인물, 혹은 야구를 포함한 각 분야에서 상징성을 띠는 인사를 섭외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역대 한국시리즈 시구자 명단을 살펴 보면 시대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한 시즌에 한 두 경기에서만 시구 이벤트를 마련했다. 1982년 원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과 4차전, 1983년에는 1차전만 각각 시구를 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아예 한국시리즈 시구가 없었다. 1988년과 1989년 역시 각각 6차전과 5차전에서 한 차례씩만 시구자가 나왔고, 1990년과 1991년도 1차전만 시구자를 섭외했다.
역사적인 첫 한국시리즈 시구를 맡은 인물은 유흥수 당시 충남도지사였다. 원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OB(두산의 전신)의 연고지역이 대전이었던 까닭. 4차전 시구자는 한국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피터 오말리 당시 LA 다저스 구단주였다. 오말리 구단주는 1989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도 다시 시구자로 나섰다. 훗날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특별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사실 초창기 시구는 주로 정치인들의 몫이었다. 한 원로 야구인은 "당시에는 시구라는 이벤트가 특별한 경기 때만 마련되는 행사였다. 정치인들의 보여주기 식, 혹은 과시용 이벤트로 많이 활용됐다"고 귀띔했다. 한국시리즈에 올라간 구단의 연고지역 단체장들은 귀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87년 삼성과 KIA의 대결에선 1차전에서 대구시장, 3차전에서 광주시장이 각각 첫 공을 던졌다. 또 1991년부터 1993년까지 1차전 시구는 모두 '시장님'들의 차지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미스코리아'들의 참여다. 1988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된 김성령이 그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시구하면서 물꼬를 텄다. 당시에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지상파 TV로 생중계됐고, 미스코리아들은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김성령은 처음으로 야구나 정치와 관계없는 인물이 시구를 맡은 케이스였다.
[▲J-Photo DB]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시리즈에서 시구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시구한 뒤 12년간 대통령의 프로야구 시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일단 스케줄을 맞추기가 어렵고, 시구가 결정된 후에도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다. 무엇보다 완벽한 보안이 최우선이다. 일정이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시구는 취소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구 명문 경남고 출신이다. 국회의원 시절 친선 야구경기에 출전했을 정도로 야구 사랑이 남달랐다. 1994년 LG와 태평양이 맞붙은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시구자로 잠실구장에 등장했다. 이어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2년 연속 시구자로 나섰다. 이후 대통령의 한국시리즈 시구는 18년간 다시 명맥이 끊겼다. 그러다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다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마운드에 올라 깜짝 시구를 했다. 이때도 '007 작전'이 펼쳐졌다. 시구가 갑작스럽게 취소될 경우를 대비해 4차전 시구 예정자가 미리 야구장에 대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 시구자를 섭외하게 된 건 1996년부터다. 1차전부터 6차전까지 모두 시구 이벤트가 열렸고, 면면도 다양했다. 송언종 당시 광주시장-체조 선수 여홍철-최기선 당시 인천시장-마라톤 선수 황영조-배우 이승연-홍재형 KBO 총재 순으로 이어졌다.
연예인 시구의 물꼬도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트였다. 정식 연예인으로 첫 시구를 맡은 인물은 고(故) 최진실이다. 1992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배우로는 처음으로 첫 공을 던졌다. 이듬해인 1993년 5차전에선 배우 하희라가 시구를 맡았다. 그 후 4년 뒤인 1997년부터는 김남주(1997년 2차전), 오연수(1997년 5차전), 채시라(1998년 1차전), 남희석(1999년 3차전), 전인화(2001년 4차전), 이효리(2003년 2차전)를 비롯해 매년 한 명 이상의 연예인들이 시구자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박정아는 2003년 7차전과 2004년 1차전 시구자로 나서면서 역대 유일한 2경기 연속 시구자로 기록됐다. 이유가 있다. 사실 2004년 1차전 시구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1차전 직전 헌법재판소가 신 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 총리가 대책회의 참석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 KBO가 부랴부랴 대체자를 물색했고, 결국 직전 경기 시구자인 박정아가 다시 마운드에 섰다.
이후에도 연예인 시구는 매년 빠지지 않고 이어졌다. 2009년에는 1차전부터 7차전까지 모두 연예인 시구자(박시연-채연-공효진-김남주-최강희-장동건-이보영)가 릴레이를 펼쳤다. 남성에 비해 여성 연예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도 특징이다.
2013년 7차전 배우 손예진의 시구를 끝으로 한국시리즈 시구의 트렌드도 바뀌기 시작했다. 흥미 위주의 이벤트를 지양하고, '스토리'를 담자는 취지였다. 물론 이전에도 종종 사연 있는 인물이 시구를 맡아 감동을 안기곤 했다. 1999년에는 2차전 시구자로 롯데 외국인 투수 에밀리아노 기론의 아내인 셰린 기론이 나왔다. 2000년 5차전에선 장애인 올림픽 사격 2관왕에 오른 김임연이 시구 주인공이었다. 또 2001년 6차전에선 프로야구 개막일(1982년 3월 27일) 출생자인 유연희 씨와 김인재 씨가 시구 행사를 함께했다.
이외에도 선로에서 아이들을 구하다 두 발목을 잃은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씨(2004년 8차전),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인 이소연 씨(2008년 3차전), 한국 최초의 야구장 여성 장내 아나운서인 모연희 씨(2013년 4차전) 등이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섰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3년간 아예 연예인 시구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사연 있는 비 연예인 시구자들이 한국시리즈를 빛냈다. 안중근 의사 증손자인 안도용 씨와 지하철 선로에서 시각장애인을 구출한 '용감한 시민' 김규성 씨를 비롯해 여성 스포츠지도자, 시각장애인, 소방관, 난치병 어린이, 야구 원로, 예비역 대령, 환경미화원, 육군 상병, 다섯 아이 입양 부부, 탈북 청소년 야구단 소속 선수 등 다양한 직업군이 최고의 무대를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