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A.J 힌치는 크게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아니었다. 스탠포드대에서 심리학 학위를 받은 수재였지만 야구는 달랐다. 2009년 애리조나 감독에 취임했을 때는 지도자로 성공 스토리를 여는 듯 했지만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하지만 휴스턴에선 다르다. 올 시즌 휴스턴을 월드시리즈에 올려놓으면서 지도력을 인정 받는 중이다. 2009년 5월 애리조나는 결단을 내렸다. 2005년부터 팀을 이끌었던 밥 멜빈을 성적 부진 이유로 해고했다. 멜빈은 2007년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을 수상했지만 2009년 첫 29경기에서 12승 밖에 거두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놨다. 관심을 모은 건 후임자였다. 고심 끝에 애리조나는 당시 서른 네 살이던 A.J. 힌치(43)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조시 번즈 당시 애리조나 단장이 "색다르다"고 말할 정도로 파격에 가까운 인사였다.
경험은 부족했고, 나이는 어렸다. 힌치는 '실패한 메이저리거'였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 동안 35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19를 기록했다. 오클랜드·캔자스시티·디트로이트·필라델피아 등을 거친 저니맨 포수. 통산 도루 저지율도 27%로 높지 않았다. 2005년 은퇴한 뒤 애리조나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몸 담았지만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애리조나는 힌치에게 감독 자리를 맡겼다. 힌치는 34세 275일에 감독이 된 2002년 에릭 웨지(당시 클리블랜드) 이후 메이저리그 최연소였다. 애리조나 마이너리그 시스템 전반에 관여했던 힌치는 저스틴 업튼·크리스 영·스티븐 드류 등 젊은 선수들과 관계가 원만해 감독 적임자로 분류됐다.
애리조나 시절 영혼의 동반자였던 조시 번즈 단장과 A.J 힌치 감독. 파격의 결과는 '실패'였다. 힌치는 2010년 7월 해고됐다. 전임자 멜빈과 같은 길을 걸었다. 데릭 홀 애리조나 사장은 힌치와 번즈 단장을 함께 내보냈다. 구단은 성명서를 통해 '우린 재능 있는 선수가 많지만 개선할 여지도 많다'고 밝혔다. 힌치가 애리조나 감독으로 남긴 성적은 89승123패. 승률은 4할을 겨우 넘겼고, 팀은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최하위에 머물렀다.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과의 원만한 관계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 베테랑들에 의해 팀이 좌지우지 됐다. 나이 어린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애리조나를 떠난 힌치는 2010년 샌디에이고 스카우트 담당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2014년 8월 직책을 사임했다. 두 번째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보 포터 감독을 시즌 중 해고한 휴스턴 감독 후보로 거론됐고, 데이브 마르티네스, 제프 매니스터 등과 경합 끝에 제프 루나우 단장의 선택을 받았다. 프런트 오피스에서 쌓은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 세이버매트릭스를 중요시 하는 루나우 단장과의 호흡도 기대요소였다.
애리조나에서 실패를 맛 본 힌치는 선수들과의 '관계' 형성에 집중했다. 지난해 팀 내 최고 유망주 알렉스 브레그먼의 부진이 대표적이다. 브레그먼은 빅리그에 데뷔한 뒤 첫 5경기에서 15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여섯 번째 경기에서 안타를 때려냈지만 32타수 1안타로 슬럼프는 계속됐다. '브레그먼을 마이너리그로 내려야 한다'는 팬들의 원성이 이어졌다. 힌치는 뚝심 있게 선발 라인업에 브레그먼을 포함시켰다. 휴스턴에서 선수들과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A.J 힌치. 저스틴 벌렌더 입단식에 참석한 힌치(왼쪽)와 제프 루나우(오른쪽) 휴스턴 단장. 어느 날에는 브레그먼을 따로 불러 "이런 움직임은 조직에서 널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반영된 것"이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감독의 신뢰 속에 브레그먼은 시즌을 마쳤고, 올해 주전 3루수를 꿰차며 타율 0.284·19홈런·71타점을 기록했다. 보스턴과의 디비전시리즈(ALDS) 4차전에선 8회 결정적인 홈런을 때려내며 극적인 5-4 승리를 이끌었다. 힌치는 "선수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이해한다"고 말했다.
명문 스탠포드대에서 심리학 학위를 받은 힌치는 야구계에서 손꼽히는 수재다. 여기에 다양한 경험까지 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선 대표팀에 차출돼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신인 드래프트에선 무려 세 번의 지명을 받았다. 1992년과 199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미네소타 입단이 가능했지만 계약을 하지 않고 대학을 택했다. 그리고 1996년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은 건 유명한 일화다. 메이저리그에서 다양한 감독을 만났던 힌치는 찰리 매뉴얼(당시 필라델피아 감독)이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스스로 "가장 존경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힌치는 지난달 3일 홈경기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당시 허리케인 '하비'의 영향으로 홈경기를 치르지 못한 휴스턴은 탬파베이 트로피카나필드에서 홈경기를 소화하고 가까스로 돌아왔다. 이어 뉴욕 메츠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힌치는 "우리 도시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상황이 더 나아지길 희망하고 기도한다"고 말하며 아픔을 위로했다. 이후 휴스턴 선수들은 유니폼에 '휴스턴 스트롱(Houston Strong)'이라는 패치를 달고 경기를 뛰고 있다.
지난달 3일 열린 홈경기에서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을 위로하고 있는 A.J 힌치. 25일(한국시간)부터 LA 다저스와 월드시리즈(WS)를 치르는 휴스턴의 각오는 남다르다. 메이저리그 구단 중 WS 우승 경험이 없는 8개(시애틀·워싱턴·샌디에이고·콜로라도·텍사스·탬파베이·밀워키) 팀 중 하나다. 구단 역사가 짧지 않아 클리블랜드(69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55년 동안 WS 무관이다.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4전 전패를 당한 WS 치욕을 지워야 한다. 그리고 허리케인으로 고통 받은 휴스턴 시민들의 아픔까지 위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