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월드시리즈(WS) 우승은 휴스턴의 몫이었다. 1962년 창단된 휴스턴은 무려 56년 만에 첫 WS 우승을 차지하면서 지긋지긋한 무관의 한을 풀어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WS 무대를 밟으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구단 역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처절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4연패로 무너졌다. 4경기에서 득실차가 6점(3-5·6-7·5-7·0-1)에 불과할 정도로 매 경기 치열하게 진행됐지만 1승도 거두지 못했다. WS 4연패 탈락은 역대 19번째. 치욕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1919년 이른바 '블랙삭스 스캔들'이 발생한 뒤 생긴 저주에 시달렸던 화이트삭스가 무려 8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해 희비쌍곡선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두 번의 실패는 없었다. 휴스턴은 올 시즌 101승을 기록하며 절정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포스트시즌(PS)에서도 상승세는 이어졌다. 디비전시리즈(ALDS)와 챔피언십시리즈(ALCS)에서 전통의 강호 보스턴과 뉴욕 양키스를 차례로 꺾으며 WS에 안착했다. 이어 29년 만에 WS 우승을 노렸던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팀' LA 다저스를 7차전 접전 끝에 꺾으며 첫 우승을 품에 안았다.
거의 모든 PS에선 '영웅'이 탄생하고, 주목 받는 선수도 나온다. WS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WS 역사상 처음으로 4경기 연속 홈런을 포함해 홈런 5개를 몰아 친 조지 스프링어(휴스턴)는 MVP를 차지했다. 하지만 실제로 주목 받은 선수는 따로 있다. 메이저리그 20년차 베테랑 카를로스 벨트란(40)이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벨트란은 캔자스시티 소속이었던 1998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신인 자격을 갖춘 1999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며 혜성 같이 떠올랐고, 리그 정상급 선수로 수년간 군림했다.
하지만 유독 WS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년 동안 PS를 6번, WS에 2번 올랐지만 빈손이었다. 결국 올 시즌 WS 우승을 맛보면서 무관의 한을 풀었다. PS에서 통산 65경기를 뛴 베테랑이지만 WS 우승 모자와 티셔츠를 입고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다. 사연도 있었다. PS에 앞서 고향 푸에르토리코에 허리케인이 급습했고 메인랜드의 70%가 침수되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는 주저 없이 100만 달러를 기부했고, 제시 크레인 휴스턴 구단주는 상업 비행기를 급파해 푸에르토리코의 구원 활동을 하는데 일조 했다. 그리고 20년간의 우승을 향한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반면 최고의 피해자 다저스의 다르빗슈 유는 트라우마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인 7월 31일(한국시간)에 맞춰 '우승 청부사'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다저스에 합류했다. 실제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까지 그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WS 무대에서 2경기 선발로 나와 모두 2회를 버티지 못했다. 최악에 가까운 결과였다. 특히 시리즈가 3승3패로 팽팽하게 맞선 7차전에 선발 등판해 1⅔이닝 3피안타 5실점으로 무너졌다. 구위는 늘 메이저 리그 최정상급으로 꼽혔지만 부상이 잦았고, 배짱이 약하다는 지적도 들었다. 이런 약점은 WS에서 다시 나타났다.
다저스는 과거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현 애리조나) 쌍두마차로도 이루지 못했던 우승을 커쇼-다르빗슈와 이루려했지만 그 꿈은 다시 산산조각 났다. 이 같은 결과는 이번 시즌이 끝나고 FA (프리에이전트) 시장에 나오는 그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역할이 될 것이다. 아직 젊은 나이와 구위가 살아있는 투수로 인정을 받겠지만 WS 평균자책점 21.60은 그에게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큰 무대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고 이 주인공을 빛을 더 밝히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 113번째 WS 명암의 주인공은 이렇게 나타났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원하고 또 그 스토리에 충실한 수혜자와 피해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화려한 선수 생활 마지막에서 긴 여정의 최고의 선물을 얻은 선수, 아직은 더 기회가 있겠지만 첫 WS 무대에서 아픔을 겪은 스타도 있다. 벨트란은 과거 두 번의 아픔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오늘의 영광을 따냈다. 오늘의 아픔을 피할 수는 없지만 내일을 위해 또 뛰고 준비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벌써부터 내년 월드 시리즈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