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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645. 왓슨과 백세시대
지난 2월 IBM은 세계 최초의 암 진단 인지 프로그램인 왓슨을 공개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의료 영상 분석 도구인 ‘왓슨 클리니컬 이미징 리뷰’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암 진단에서 시작된 왓슨은 유전체 분석, 신약 및 치료법 개발, 임상시험 매칭, 의료 영상 분석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스스로 진화하는 왓슨은 미래의 의사 모습을 보여 줬다. 만약 왓슨이 세포처럼 작아질 수 있다면 인간의 뇌에 이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인간이 왓슨을 이용해 자신의 건강을 빅데이터처럼 관리하게 된다면 백세시대는 물론이요,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도 될 수 있다.
수명이 다한 장기는 교체하고 병에 걸렸다면 가장 빠른 치료법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후유증도 막아 준다. 또 치매, 알츠하이머 등 노인성 뇌 질환도 왓슨이 이겨 낼 수 있게 해 준다. 뇌 안에 왓슨이 있기 때문에 뇌 질환 자체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삶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한다. 노인성치매는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해야 하는 질병 중 하나였다. 노인성치매 환자들을 위한 간병인, 요양소 등에 국가적 지원이 있었다. 치매란 질병 자체가 없어진다면 이런 국가적 시스템도 사라진다. 왓슨이 노인성치매까지 완벽하게 없애 준다면 노인의 삶도 180도 달라진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가 건망증이다. 내가 줄 돈을 잊어버리면 건망증이고, 내가 받을 돈을 잊어버리면 치매라고 한다. 인간은 적당히 잊어버리면서 살아야 한다. 과거에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기억하면 우선 심적으로 괴로워진다.
과거를 잊는 것은 우선 나를 위해 좋다. 과거를 잊을 수 없다면 기억을 상기할 때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그 감정들은 정제되지 못한 채 분노, 미움, 화 등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이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채 왓슨으로 인해 똑똑해진다면 노인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영악해질 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신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반면 인간은 죽음이 있기에 이번 생의 역할을 다하고 다음 생을 또 맞이할 수 있다. 여러 번 또 다른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왓슨으로 인해 수명이 하염없이 연장이 된다면 그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신처럼 영원불멸의 삶을 산다고 상상해 보자. 청춘으로 사는 동안에는 행복하겠지만 불행히도 인생의 대부분은 영악한 노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노인이 되면서 왓슨은 더 많은 컨트롤을 시도할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왓슨의 잔소리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게 된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내 모습도 싫어진다. 절실히 죽음을 원하게 될 때 인간은 ‘제발 죽게 해 달라’며 병원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의 미래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계속 진화하며 상상할 수 없는 아이큐(IQ)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인간으로 인해 새로운 변종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 암, 치매, 죽음 등 병이 없는 사회가 오면 과연 행복한지 묻고 싶다. 전쟁, 질병, 죽음 등이 있었기에 인류가 지금처럼 발전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AI는 당장 인류를 발전시켜도 훗날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 불행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