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이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2017 일본과 첫 경기에서 아쉽게 역전패한 지난 16일 밤. 숙소로 돌아간 선수들이 아쉬움과 분함에 잠 못 이루던 그 시간, 대표팀 투수 전원이 모여 있는 SNS 단체 채팅방에 긴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대표팀 최고참이자 투수 조장 장필준(29·삼성)이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한 팀이다. 잘한 선수가 자만할 필요도, 못한 선수가 위축될 필요도 없다. 이겨도 팀이 이기는 것이고, 져도 팀이 지는 것이다." 투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자부심도 강조했다. "투수는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는 포지션이다.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충분히 자신을 믿고 던져도 된다."
한국 대표팀은 다음 날 대만전에서 1-0으로 팀 완봉승을 올렸다. 임기영(KIA)이 7이닝, 박진형(롯데)이 ⅔이닝 그리고 장필준이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장필준은 한밤중에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대표팀에 함께 있는 동생들이 너무 착하고 귀엽다. (일본전 패배 이후) 안쓰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장필준은 한국 나이로 서른이지만, 프로에 입단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아 대회 출전 자격을 얻었다. 투수 가운데 막내인 구창모(NC)와 아홉 살 차이가 난다. 맏형으로서 대표팀 투수진의 리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마운드에서 마무리 투수라는 중책도 소화해야 했다. 후배 투수들은 "문자메시지를 보고 감동했다. 형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대만전이 끝나자마자 장필준을 힘껏 끌어안은 박진형은 "형이 단체 채팅방에서 격려를 많이 해 주시는데 그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정작 당사자인 장필준은 손사래를 쳤다. "동생들에게 힘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나"라고 했다. 그는 "어쨌든 '야구'라는 매개체로 한자리에 모인 선수들이고, 그 나잇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 아닌가"라며 "그런 동생들이 너무 잘 따라와 주고 내가 힘이 된다고 하니 오히려 고맙다. 그들이 내게 많은 에너지를 주는 것 같다"고 했다.
해외파 출신인 그는 삼성에서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그 과정에서 또래들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누구보다 진지하다. 휴식일이었던 18일 도쿄돔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일본-대만전을 지켜본 선수가 바로 그였다. 한 손에는 수첩, 한 손에는 태블릿 PC를 들고 홀로 자리를 지켰다. 수시로 메모하고 전력 분석 영상을 리플레이하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장필준은 "야구는 내 직업이다. 내가 먹고사는 길이다. '야구'라는 매개체를 진지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며 "매번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늘도 감동해서 내 야구 인생을 도와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태극마크는 장필준에게 또 다른 심리적 원동력이다. 그는 "다른 친구들보다 늦은 나이지만, 이렇게 도쿄돔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라며 "앞으로 야구를 해내 가는 데 힘이 될 것 같다. 내년 시즌 소속팀에서도 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취재진을 다시 붙잡았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대표팀 매니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이번 국가대표팀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대표팀을 위해 힘쓰는 줄 몰랐다"며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대표팀의 '맏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