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열어보니 '멜로'다. 단순히 스릴러가 가미된 드라마, 여성 원톱 주연의 느와르라고만 생각했던 영화 '침묵(정지우 감독)'과 '미옥(이안규 감독)'이 개봉 후 영화의 장르를 탈바꿈 시킬 만큼의 멜로 스토리로 관객들을 '뒤통수' 쳤다.
'침묵'은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남자의 이야기, '미옥'은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2인자 현정과 그녀를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상훈, 그리고 출세를 눈앞에 두고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최검사까지 벼랑끝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은 세 사람의 전쟁을 다룬 작품으로 설명됐다.
'침묵'은 최민식의 원맨쇼가 예고됐지만 그것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여겨졌지 관람 후 애달픈 '멜로 눈빛'이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미옥' 역시 김혜수표 느와르물이라는 홍보 문구에 집중되면서 영화의 주 스토리가 '이선균의 사랑이 낳은 파국'일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침묵'과 '미옥'은 호불호 갈리는 포인트가 다양한데다가 최근 가벼운 오락 영화에 푹 빠진 관객들의 달라진 성향에 최종 흥행에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그랬듯 일부 관객들은 '침묵'과 '미옥'에 강한 호감을 표하며 오히려 최민식과 이선균의 멜로 연기를 더 많이 보고 싶다는 반응까지 내비치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와 흥망을 떠나 '침묵'의 최민식, '미옥'의 이선균 캐릭터 자체만 본다면 이들은 더할 나위없이 맡은 캐릭터의 매력을 120%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최민식은 50대, 이선균은 40대를 훌쩍 넘긴 나이로 농익은 감성에 도전한 것 역시 박수받아 마땅하다. 역대급 인생 연기를 펼쳤기 때문에 성적에 더 큰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더 이상 재발견 될 것 없는 배우들의 재발견을 일궈냈다는 것이 그나마 남은 성과라면 성과다.
'침묵' 같은 경우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최민식의 약혼녀가 이하늬라는 데에 관객들의 반감은 상당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데다가 비주얼적인 케미스트리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것. 하지만 최민식은 역시 최민식이었고, 주름진 얼굴로 약혼녀를 떠올리며 떨군 눈물 한 방울에 관객들의 마음 역시 녹아 내렸다. 최민식의 연기가 곧 개연성이었고,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되려 "최민식·이하늬 멜로를 더 보고 싶다"는 의견을 쏟아냈다.
'미옥'도 애초 예비 관객들에게 인식됐던 영화와 실제 스토리에 괴리감이 있어 관객들을 당황하게 했을 뿐, 이선균이 연기한 상훈의 감정선만큼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는 평이다. 예민하고 까칠한 연기의 대가 이선균이 오랜시간 한 여자만 사랑하고 집착하는 연기를 펼쳤다는데 반색을 표하지 않을 이들은 없다. 포스터에도 등장한 "나한테 너 말고 꿈이 어디있어"라는 대사에 수 많은 여성 팬들이 기대를 높였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최민식과 이선균 역시 멜로 도전에는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표했다. 최민식은 "살인자만 하다가 오랜만에 멜로를 해 반갑고 좋았다"고 밝혔고, 이선균은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애정결핍이 있고, 그래서 가질 수 없지만 처음 사랑을 느끼게 해준 미옥에게 집착한다. 솔직히 배우라면 한 번쯤 욕심낼만한 좋은 캐릭터다. 내가 좀 더 풍부하게 만들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고백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침묵'과 '미옥'이 흥행에 실패해도 비슷한 영화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배우들만 꾸준히 눈을 돌려 준다면 그만큼 발전 가능성과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한 관계자는 "올해 영화계를 보면 대작보다 중·저예산급 영화들이 복병으로 흥했다. 물론 오락 장르가 한정돼 있고 느와르·멜로는 여전히 주춤하지만 언제 판도가 뒤바뀔지 모른다"며 "'불한당'이 그랬듯 '침묵' '미옥'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들, 혹은 캐릭터들이 재평가 받게 될 날도 올 것이라 믿는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