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재홍(40) 부천FC 코치가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3년째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 부천에 몸담고 있는 박 코치는 "지난 3년간 그렇듯 올해도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선수 때는 제가 좋은 활약을 하면 스스로 만족했는데, 코치는 선수 11명, 벤치 멤버까지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 이상 만족할 수 없게 되더라"라고 했다.
박 코치는 우연히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2014년 발목 부상으로 1년간 무적 신분이 됐다. 30대 중반의 나이였기에 재활은 더뎠다. 설상가상으로 스트레스 탓에 체중이 늘어 120kg까지 불었다. 그런 가운데 손을 내민 것은 고향팀 부천이다. 박 코치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부천 구단으로부터 다시 한 번 선수로 뛰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부천에서 태어나 부천에서 운동을 한 저는 그동안 받은 것을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박 코치는 이를 악물고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는 2개월 만에 무려 30kg를 빼 체중 90kg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뺀 체중 탓에 부상이 재발하면서 선수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대신 지도자가 됐다. 박 코치는 2015년부터 부천 스카우터 겸 코치 타이틀을 달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코치가 됐는데, 유소년에서 올라온 2군 선수들까지 지도하게 됐다. 선수들을 잘 가르쳐야 하는데, 아는 게 없어 앞이 캄캄했다"로 털어놨다.
박 코치는 부족한 지도자 경험을 채우기 위해 밤낮 없이 뛰었다. 그는 지도자가 된 선배들은 물론 지방 중고교에서 코치로 지내는 후배까지, 감독이 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달려가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박 코치는 "후배한테 배운다고 자존심 상하면 지도자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전력 분석, 해외 영상, 각종 서적까지 독파하며 1년간 죽었다 생각하고 내실을 다졌다"고 했다.
2016년 박 코치는 부천 리저브리그(R리그) 팀을 맡았다. R리그는 각 구단의 유스 출신 유망주들이 출전해 기량을 끌어올리고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곳이다. 박 코치는 "처음엔 교체 타이밍이 성공적이고 경기에 이기면 기뻤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니 제자들이 1군으로 승격돼 자리를 잡는 모습에 '아, 이게 지도자만이 느끼는 보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박 코치에겐 현역 시절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됐다. 박 코치는 남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다. 센터백으로 뛴 그는 정상에 올라본 선수다. 키 184cm의 탄탄한 체격을 갖춘 그는 학창 시절 대한축구협회가 주목하는 특급 유망주였다. 명지대 시절인 2000년엔 허정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고 같은해 열린 아시안컵과 시드니올림픽에 연달아 출전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에도 기회를 얻었다. 그는 홍명보, 박지성, 이영표 등 지금은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된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2002 한일월드컵을 대비했다. 하지만 잦은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아쉽게도 국내에서 열린 월드컵 무대는 밟지 못했다. 이후 다시 재기해 2004 아시안컵에 나서기도 했다. 박 코치는 "선수로서 할 수 있는 경험은 거의 다 해봤다. 월드컵 출전 외엔 모든 국제 대회를 다 뛰었다"고 말했다.
쓴맛도 경험했다. 2003년 강호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박재홍은 전남 드래곤즈, 경남FC 등에서 뛰며 전성기를 달렸다. 반면 우니베르시타테아 클루지(루마니아), 장쑤 슌텐(중국), 폴리스 유나이티드(태국)에서 뛰며 외국인 선수의 설움을 겪기도 했다. 이때 경험은 탄탄대로만 달려온 박재홍이 지도자의 꿈을 키워가는 데 버팀목이 됐다. 그는 "대표팀에서 뛰고 국내 무대만 경험했다면, 챌린지 선수들, 벤치에 앉는 선수들, R리그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30대에 접어들어 해외 여러 나라를 경험하고, 다양한 감독들의 지도를 받으며 축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했다. 박 코치는 "히딩크는 물론 국내외 다수의 지도자들과 생활하다보니, 여러 감독의 장점을 흡수하게 되더라"라고 덧붙였다.
부상을 이겨낸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박재홍은 2010년 양쪽 발목 뼈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수술을 한 것 외에도 총 3차례나 내측 인대가 끊어졌다. 그러나 그는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매번 지옥같은 재활을 근성으로 버텨내며 재기했다. 박 코치는 "다칠 때마다 축구를 그만해야겠다는 유혹이 찾아왔다"며 "그때 그만뒀다면 오늘의 지도자 박재홍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코치의 꿈은 단순하다. 그는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며 지도자로서 성장할 것"이라면서 "당장 잘 하는 지도자보다는 선수들과 팬들이 믿고 지켜볼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