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원은 지난달 28일 종영한 KBS 2TV '마녀의 법정'에서 마이듬 역을 맡아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 6.6%(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시작해 14%가 넘는 시청률로 종영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려원은 "마이듬 역을 하면서 실제 성향도 바뀌었다. 배울 게 많았던 현장이었다"라며 기쁨을 드러냈다.
'마녀의 법정'은 기대작이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그저 그런 드라마였다. 정려원의 검사 연기에 대해 미심쩍은 눈도 있었다. 막상 베일을 벗은 '마녀의 법정'은 정려원 아니면 마이듬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2년 만에 안방극장을 찾아 이른바 '대박'을 쳤다. 인터뷰 말미 최우수상이 아닌 인기상을 받고 싶다는 말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①편에 이어
- 시즌2 요청도 많이 나온다. "안그래도 종방연 때 그런 얘기를 했다. 배우들은 모두 '오케이' 했다. 그런데 작가님이 시즌2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3년 동안 자료 모으는데 힘들었던 것 같다. 분위기에 휩싸여서 하기엔 작가님이 해야할 몫이 많아 부담감을 느낀 것 같더라."
- 인생 캐릭터가 은근 많다. 매번 경신하는 느낌이다. 다음번에 부담감이 생길 것 같기도 하다. "역할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또 경신하지 않을까. 역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듬이 땐 작가님이 멱살을 잡고 끝까지 끌고 가서 만족했던 캐릭터다. 마이듬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안티 히어로다. 개과천선이 되면 그건 캐릭터 성향을 잃는 것과 같았다."
- 15년째 재발견이라는 말을 했다. 왜 그런 말을 들을까. "하도 재발견 재발견해서 '발견이 안 됐다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직도 남은 발견이 있구나'라는 말 같았다. 파도 파도 나오는 파수꾼 같은 얘기다. 죽을 때까지 재발견돼도 좋을 것 같다."
- 최근 여성 캐릭터가 부각되는 드라마가 많았다. 드라마 흐름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나. "''힘쎈여자 도봉순' 볼 때 통쾌하고 반가웠다. 박보영이 반대의 성향의 역할을 맡는 게 신선했다. 그리고 (김)선아 언니·(김)희선 언니의 '품위 있는 그녀'가 성공했다. 그리고 '마녀의 법정'이 나왔다. 이건 시대의 흐름인 것 같았다. 그래서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윤현민과의 '살짝 로맨스'가 더욱 시청자들을 애타게 했다. 키스도 아닌 뽀뽀였다. "로맨스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로맨스 타임이 살짝 있어서 오히려 막 했다. 현민이가 로맨스가 하고 싶었는지 로맨스 연기할 땐 매우 밝았다. 그래서 더 케미가 좋았던 것 같다. 짧지만 연구도 했다. 아쉽게 현민이가 '마이듬'을 'MY듬'으로 저장한 게 화면에 크게 나오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 어느 순간 촬영장에서 선배이겠다. "선배님한테 '어떻게 하냐' 물어보는 입장이었다가 어느 순간 현장에서 나이가 가장 많더라. 이제는 후배들이 나에게 미주알 고주알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더욱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아직까진 후배 입장이 더 좋다. 선배여서 외로웠던 경우가 많았다. 무게감이 컸다."
- 전광렬과의 기 싸움도 장난 아니었다. "기 부분에선 굉장히 관대한 분이었다. 일부러 내가 악을 쓰는 게 '귀여웠다'고 하더라. 선배님 기가 1000이면 그 기를 꺾고 싶지 않았다. 2000으로 올리고 싶었다. 오버하고 미친년이 되더라도 선배님에게 좋은 기를 주고 나도 받고 싶었다. 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때로는 활발했지만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연기할 땐 감정선이 깊었다. "감정 널뛰기가 너무 많았다. 정체성에 혼란도 왔다. 그래도 '엄마'라는 단어는 나에게도 소중한 단어다. 엄마랑 떨어져있어서 항상 보고 싶다. 4부에 혼자서 '엄마'를 부르는 신이 있었다. 힘 빠진 소리가 나왔는데, 혼자 있을 때 이렇게 부를 것 같았다. 그리고 이일화 선배님은 모두를 울리겠다는 눈빛을 갖고 있다. 연기할 때 로딩할 필요가 없었다. 이일화 선배님을 보면 마음이 먹먹했다. 조용한데 파워풀하다."
- 마이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계속 마이듬이었으면 좋겠다. 나보다 깡이 세고 담도 있고 능글맞다. 나와 중화됐으면 좋겠다. 배우라는 직업도 적당히 농담하고 정색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할 때 상대가 상처받을 것 같아서 얘기를 안 했다."
-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하게 된 이유는. "가수 때 업앤 다운이 있었다. 연예계는 신기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KBS 아침드라마를 찍으러 갔는데 정말 재밌더라. 그때 주현 선생님이 가수 하지 말고 연기하라고 했다. 2집 녹음하러 갔는데 드라마 현장에 다시 가고 싶었다. 근데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죄송스러워서 말을 하지 못했다. '똑바로 살아라' 찍는데 또 재밌더라. 노래·춤을 좋아하긴 했지만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연기하면서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깨달았다. 그래서 계약 끝났을 때 연기 하겠다고 선언했다."
- '마녀의 법정'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성장을 한 것 같다. "이 드라마 확정 짓기 전, 목사님께 '잘 해낼 자신이 없다'고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그때 목사님이 '이 작품으로 연기 인생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고 했다. 작품 중간 '전과 후로 나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짧은 시간에 스스로 성장을 했다고 느꼈다."
- 그런데 약 2년을 쉬었다. "영화는 중간에 찍었는데 드라마 시나리오가 들어온 게 없었다. 하나 들어오긴 했는데 장르물이고 대사가 너무 많았다. '마녀의 법정'은 그 시나리오보다 더 속사포였다. 그런데 이걸 포기하면 드라마가 돌아가는 속도를 못 따라갈 것 같았다. 결국 장르물을 해야 할 시기였던 것 같다."
-- 대상 후보에도 올랐다. "대상과 최우수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욕심을 내고 싶은 건 인기상이다. 정말 너무 받고 싶다. 여태까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인기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도와달라."
- '마녀의 법정'에서는 연애 숙맥이었다. 현실에선 어떤가. "이듬이는 연애를 해볼 기회가 없었다. 남자를 경쟁상대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나는 이듬이 보단 연애 감정이 더 복잡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