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경기뿐 아니라 다양한 스토리로 더욱 풍성해진다. 때로는 재치 있는 입담이나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화제를 낳곤 한다. 2017년 KBO 리그도 마찬가지였다. 올 시즌 녹색 다이아몬드를 뜨겁게 달군 '말말말'을 정리했다.
"(롯데에) 5할 승률(8승8패)이 되면 억울할 것 같다." (NC 손시헌) 가장 도발적인 멘트였다. 손시헌은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지역 라이벌'인 롯데를 두고 "(2016년의) 15승1패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대 우세를 이어 가고 싶다"고 했다. NC는 롯데와 맞대결에서 7승9패로 뒤져 정규 시즌을 4위로 마쳤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3승2패로 이겼다. 상대를 향한 비아냥거림이 아닌 미디어데이 특성상 재미를 더해 한 말이었지만, 손시헌에게 한 시즌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인스타(그램) 하지 말고 운동해라." (삼성 이승엽) 평소 가장 아끼던 후배 구자욱에게 남긴 일침(?)이다. 이승엽이 피부과 방문 사진을 올리자 구자욱이 "좋아 보이십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당시 일본 오키나와에서 마무리 훈련 중이던 구자욱이 "열운(열심히 운동) 중입니다"라고 말하자 이승엽은 "인스타 할 시간에 스윙해라. 난 은퇴해서 하는 거다"라고 받아쳤다. 두 사람의 절친한 관계를 보여 주는 대목. 다만 일부 선수가 SNS를 통해 논란을 낳은 적이 있는 만큼 '모범 선수의 대명사'인 이승엽의 한마디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잠실구장은 전광판을 빼면 다 KIA의 것." (KIA 양현종) 열성적인 팬들의 응원을 염두에 둔 양현종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다. KIA-두산의 한국시리즈(KS) 미디어데이에서 "단군신화를 보면 곰이 호랑이를 이기지 않았나. 마늘과 쑥을 먹은 곰의 인내와 끈기로 호랑이를 잡도록 하겠다"는 유희관의 도발(?)에 양현종은 이렇게 응수했다. 그는 "홈 7연전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KIA는 광주에서 열린 KS 1~2차전뿐 아니라 잠실에서 열린 3~5차전에서도 빨간 물결로 도배한 팬들의 응원에 8년 만의 우승으로 보답했다.
"눈물 아니고 샴페인이다." (KIA 김기태 감독) 한국시리즈 우승 세리머니 직후 김기태 감독의 눈은 뻘겋게 충혈돼 있었다. 선수들을 부둥켜안으며 울컥한 모습이 여러 차례 카메라에 잡혔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그는 "눈물이 아니고 샴페인이다. 눈물로 보였을 거다"고 반전의 답을 했다. 하지만 정규 시즌 우승 확정 뒤에도 눈물을 보였던 그다. 김 감독은 "처음 느끼는 울컥한 감정에 기분이 좋았던 건 사실"이라며 "나도 모르게 팬들에게 큰절을 했다"고 말했다.
"요즘 10개 구단 전체 분위기가…" (LG 박용택) 박용택의 뼈 있는 한마디. 입답이 좋은 그는 울림이 있는 소감을 남겼다. 이번 비시즌에 각 구단 베테랑은 방출·이적 등 칼바람을 맞았다. FA 시장에서도 찬밥 신세다. 박용택은 "요즘 젊고 조금 더 어린 친구들을 많이 위해 주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내년에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된다. 불혹이니까 흔들리지 않고 LG 트윈스를 잘 이끌어서 팬 여러분께 보답하겠습니다"고 말했다.
"펑고 좀 천천히 해 주시면…." (넥센 이정후) 평생 한 번뿐인 신인상을 수상한 이정후는 사회자의 요청에 긴장하지 않고 재치 있게 답했다. 이종범-이정후 부자는 2017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 코치와 선수로 함께했다. 그는 "코치님(이종범)께 부탁드리고 싶다. 어제 하루 연습했는데 형들로부터 많은 불만을 들었다. '(외야) 펑고 템포가 너무 빨라서 스프링캠프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며 공식 석상에서 아버지께 웃음으로 부탁했다.
"건강한 팀을 만들겠다."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 김성근 감독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이 임시로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그는 "김성근 감독님께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보좌하는 입장이었던 나는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고 했다"고 밝혔다. 향후 팀 운영에 대한 질문에 이 감독대행은 "부상 전력을 최소화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 '건강한 팀'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둘 생각이다"고 밝혔다. 한화는 이전까지 유독 부상자가 많았고, 혹사 논란에 시달렸다.
"비디오 판독 시 전광판에 화면이 나와야 한다." (kt 김진욱 감독)
소신 발언이다. KBO는 비디오 판독을 도입한 첫 시즌에 심각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오독이 잇달았고, 최종 판정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돼 팬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이에 김진욱 감독은 "센터에서 결정하는 내용은 심판도 모른다"며 "화면을 다 같이 보면 좀 더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4월 9일 수원 삼성전서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하다 시즌 1호 퇴장을 당한 김 감독은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제외하고, 모두 비디오 판독 대상으로 넣자"고 주장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들입니다." (APBC 대표팀) 감동의 한마디였다. 2017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 나선 야구대표팀의 하루 일정표에 담긴 메시지. "대만전은 대한민국 야구의 자존심입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지난 보름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유지현 대표팀 코치가 매 경기 전 새로운 문구로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투수조의 맏형인 장필준은 한밤중에 후배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내가 이 선수들의 능력에 비해 너무 걱정했던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할 정도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