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 수문장 강현무(23)에게 2017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축구 좀 한다’는 칭찬 속에 학창시절 내내 공을 찼고 연령대 대표팀에도 선발돼 2014년 K리그 명문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었지만 입단 후 3년 동안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언제나 굳건하게 포항의 골문을 지켰던 신화용(35)이 있었고, 그 뒤에는 강현무보다 경험이 많은 세컨드 골키퍼들이 호시탐탐 출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세컨드 골키퍼도 출전하기 어려운 축구판에서 팀의 세 번째 골키퍼인 강현무가 골문을 지킬 기회란 사실상 0에 수렴했다.
3년, 입단 이후부터 일수로 따지면 꼬박 1169일. 와신상담하며 기다리던 강현무에게 기회가 온 건 신화용이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부터다. 포항의 골키퍼 층이 얇아졌고 설상가상 대체자로 임대된 노동건(27)은 개막전 한 경기에 나선 뒤 무릎 타박상을 당했다. 세컨드 골키퍼였던 김진영(26)도 이미 장기 부상 중이었던 터라 자연스레 기회가 왔다. 그리고 강현무는 안방에서 열린 데뷔전에서 선방쇼를 펼치며 긴 기다림을 끝내고 팀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매김했다.
어렵게 잡은 기회인만큼 강현무는 지난 시즌 최선을 다해 뛰었다. 소속팀 포항이 상위 스플릿에 잔류하진 못했지만 출전할 때마다 매 경기 선방쇼를 펼치며 고군분투하는 막내의 모습에 포항 팬들은 ‘꽃길만 걸으라’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일까. 33경기 출전, 경기당 실점률 1.37의 준수한 기록으로 시즌을 마친 강현무는 김봉길(52)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대표팀 1, 2차 소집에 연달아 이름이 불렸다. 2014년 19세 이하(U-19) 대표팀에 소집된 이후 3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단 셈이다.
“원래대로라면 시즌 끝나고 휴가를 즐길 땐데 다시 소집돼서 경쟁하고 있으니 힘들긴 하죠.” 경남 창원에서 진행된 1차 훈련에 소집된 강현무의 소감이었다. “팀에서 하는 겨울 훈련과는 아무래도 많이 다르다”고 얘기한 강현무는 “이제 겨우 4년차지만 그래도 팀에서 할 때는 익숙해서 그런지 마음도 편하고, 시간도 빨리 갔는데 여기선 매 순간 경쟁을 해야 하니까… 시간이 참 안 가는 것 같다”며 웃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U-23 대표팀엔 아는 얼굴이 많아 마음은 한결 편하다. 대표적인 선수가 U-19 챔피언십 때 주전 경쟁을 펼쳤던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이태희(23)다. 강현무는 “(이)태희랑은 중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라 서로 친하다. 처음엔 (송)범근(21·전북 현대)이와 같은 방을 썼는데 어색하고 불편해서 태희 방에 가서 자기도 했다”며 “요샌 범근이와도 무척 친해졌다. 워낙 힘이 센 친구라 가끔 투닥거리다가 때리기도 하는데 괜히 친해졌다 싶다”고 슬쩍 귀띔했다.
강현무와 송범근, 이태희가 경합 중인 골키퍼 포지션은 U-23 대표팀 내에서도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자리다. 국제대회 경험이 많고 감각이 뛰어난 송범근, 프로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강현무와 이태희 중 누가 주전 골키퍼로 나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훈련에 임하는 모든 순간이 시험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주전 경쟁의 긴장감이 있는 만큼, 아무리 친해도 골키퍼 사이에 미묘한 경쟁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사실상 주전 골키퍼 외엔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가 거의 없는 골키퍼란 포지션의 특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정은 우정, 경쟁은 경쟁인 셈이다.
강현무 역시 마찬가지다. 강현무는 “(반드시 주전이 되겠다는)그런 마음이 없으면 운동 못한다”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그는 “겉으로는 티내지 않고 서로 웃고 얘기하면서도 다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거다. 물론 생활할 때는 서로 친구처럼 마냥 즐겁게 얘기하고 고민도 털어놓고 한다. 그러다가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경쟁자가 되는 것”이라고 다부지게 얘기했다.
지금 이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는 역시 곧 다가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다. 11일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은 아시안게임을 위한 전초전과 같다. 챔피언십 최종 명단에 들어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아시안게임으로 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허리 통증으로 일주일가량 휴식을 취했던 강현무는 2018년 첫날인 1일 다시 훈련에 복귀했다. 주어진 시간이 짧은 만큼 잠깐의 공백도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강현무는 “이제 몸은 좋아졌다”며 “아시안게임에는 전부터 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태희나 범근이 등 경쟁자들이 모두 잘하고 있으니, 백지 상태에서 만들어 나간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물론 대표팀만 경쟁의 장이 아니다. 강현무의 소속팀인 포항은 겨울 이적시장에서 부천FC의 주전 골키퍼 류원우(28)를 영입했다. 강현무의 대표팀 차출을 고려해 얇은 골키퍼 스쿼드를 보강하기 위한 조치지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놓고 강현무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에 강현무는 “항상 하던 것처럼 간절함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고 굵게 말할 뿐이다. “잘하든 못하든 늘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위해 경기장에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포항이 상위권으로 갈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팬들에게 다짐한 강현무는 “대표팀에서도, 포항에서도 선의의 경쟁을 이어가겠다. 단, 양보는 없다”고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