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이 잇따라 반려동물 시장 잡기에 나서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 비율이 네 가구 중 한 가구꼴로 늘면서 관련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이에 기존 반려동물 영세 업소들은 ‘골목 상권 침해’를 주장하며 대기업의 반려동물 시장 진출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6조원 시장을 잡아라"… 유통 공룡들 '군침'
2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 비율은 28.1%에 달했다. 2012년 17.9%에서 5년 새 10.2%p 증가했다. 전국 네 가구 중 한 가구꼴로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얘기다. 반려견과 함께 사는 인구도 2013년에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섰고, 2020년에는 2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늘어나자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 집계를 보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12년 9000억원대에서 2015년 1조8000억원대로 증가했고, 2020년에는 5조8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려동물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유통가에서는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롯데백화점 강남점은 지난 26일 백화점 최초로 90㎡ 규모의 반려동물 전문 컨설팅 스토어 '집사'를 열었다. 집사가 집안일을 살피듯 반려동물의 생애 주기와 특성에 따라 문제점을 분석하고 맞춤형 설루션을 제시한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프리미엄 사료 및 간식 제품도 판매하며, 오븐에서 직접 구운 베이커리와 쿠키를 선보이는 '라이브 키친'도 마련했다.
앞서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의 반려견 이름(몰리)을 딴 '몰리스펫'을 이마트·스타필드 등 신세계 계열 대형 마트에서 직영하며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작년에는 반려동물용품전 '펫페어'를 열고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반려동물 용품 매장을 선보였다.
편의점도 반려동물 시장 경쟁에 본격적으로 가세하고 있다.
편의점 CU(씨유)는 기존 반려견 용품 브랜드들의 제품을 판매하던 데서 벗어나 반려동물 용품 전문 업체인 '하울팟'과 손잡고 CU 전용 반려동물 브랜드 '하울고'를 최근 론칭했다.
하울팟은 환경친화적 재료와 디자인을 강조한 프리미엄 반려동물 용품 업체로, CU와 손잡고 론칭하는 하울고 상품들도 하울팟의 노하우를 살려 균형 잡힌 영양 제공과 감각적인 디자인에 집중했다. CU는 반려동물 용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지역 100곳을 선정해 시리우스·더 리얼·아침애 등 다양한 프리미엄 반려견 브랜드의 상품으로 구성한 반려동물 용품 존 'CU 펫하우스'를 오픈한다.
"10만 골목 상권 생존 위협" 중소 업체 반발
유통 대기업들이 잇따라 반려동물 시장에 뛰어들면서 일부 중소 업체들을 중심으로 "골목 상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산업이 없는 현 시점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남아 있을 수 있는 골목 상권의 반려동물 산업까지 결국 대기업이 잠식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반려동물 업계 관계자 모임인 한국펫소매협회의 관계자는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유통 대기업들이 반려동물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면 중소 업체들은 모두 말라 죽을 것"이라며 "이미 동네 슈퍼마켓, 동네 빵집 등이 초토화된 사례가 있는데 반려동물 업체들도 비슷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펫숍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그야말로 날벼락이 떨어졌다"며 "유통 대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하려면 기존 종사자들과 공생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정부 차원에서 보호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국펫소매협회는 지난 11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과 동반성장위원회를 잇따라 방문, 반려동물 산업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협조를 요청했다.
또 다른 반려동물 산업 종사자들의 협의체인 반려동물협회도 롯데백화점이 반려동물 전문 컨설팅 매장인 '집사'를 개장한 데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반려동물협회 관계자는 "작년 10월 전국적으로 진행된 릴레이 집회 당시 롯데는 반려동물 산업 진출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직속 '펫 비즈니스 프로젝트팀'을 계속 가동하고 있다"며 "이는 반려동물 산업 종사자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유통 공룡 업체들이 극심한 불경기 속에 고통받고 있는 10만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특히 롯데는 대표적 생계형 사업군인 반려동물 산업 진출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묻지 마식 이윤 독점만을 추구하는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직속 '펫 비즈니스 프로젝트팀'을 해체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롯데백화점 측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고객들의 쇼핑 편의을 돕기 위해 집사를 오픈한 것"이라며 "판매하는 제품 역시 중소 파트너사와 협력해서 만든 제품인 만큼 롯데가 골목 상권을 침범하고 있다는 반려동물협회의 주장은 오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