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중훈(52)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다.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많지만 그 중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꼭 박중훈이 있다.
충무로에서 기나긴 활동을 해오던 박중훈이 오랜만에 드라마로 눈을 돌렸다. 1994년 종영한 '머나먼 쏭바강' 이후 딱 24년만이다. 박중훈을 아는 기성세대들은 그의 드라마 컴백에 환호했다. "드라마는 24년만이고 연기는 7년만이에요. 드라마가 반응이 좀 있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저더러 '연기 잘하는, 모르는 배우'라고 했다고 해요. 젊은 사람들은 저를 당연히 모르겠죠. 재미있는 반응이었어요."
충무로의 톱스타 박중훈은 200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갔다. 할리우드 '찰리의 진실'에 출연해 의미있는 경험을 쌓고 왔다. 국내서 흥행에 성공하진 못 했지만 할리우드 진출만으로 의미있었다. 2007년에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미국서 회고전을 개최했다. 2013년에는 직접 메가폰을 잡아 '톱스타'를 만들었다. "영화 연출은 예전부터 생각해뒀고 기회가 닿아 한 번 도전해봤지만 쉽지 않았어요. 투자도 힘들었고요. '박중훈이면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이 안일했단걸 깨닫게 했죠."
'나쁜 녀석들2'를 끝낸 박중훈은 영광의 상처가 많이 남았다. 무릎 인대가 늘어나고 여기저기 다친 곳 투성이다. 그 험한 액션신을 일부 대역만을 쓴 채 소화했다. 뛰고 치고 박고 싸우고 또 달리기를 수차례. "작품이 오랜만이기도 하고 몸의 회복 속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영광의 상처라고 하기엔 여기저기 다친 곳이 너무 많아 재활이 우선일 거 같네요. 하하"
박중훈은 와인을 즐긴다. 이날 본인이 직접 백팩에 가져온 와인 두 병을 꺼냈다. 1만원도 안 하는 저가 와인이란건 강조했다. 술이 술술 들어갈 때마다 사뭇 진지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박중훈을 위한 자리였다.
>>①에서 이어집니다
-드라마가 24년만이라 대중은 신선했어요. "연기를 오랜만에 해 관심을 가진 거 같아요. 꼭 드라마라서는 아니고요. 솔직히 요즘 잘하는 친구들 많은데 그런 배우들이 신선하지 제가 뭐라고."
-결과는 만족하나요. "껍질을 부수게 해 준 것만으로 너무 고맙고 그 외에도 당연히 만족하죠. 제작진과 함께한 배우들 모두 좋은 사람들과의 작업이었어요. 좋은 기운도 많이 얻었고 드라마 업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요."
-조동혁 씨의 등장은 시즌3에 대한 암시인가요. "저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제작진도 큰 뜻 없이 일종의 서비스 차원에서 해놓은 장치 같아요. 그것과 관련해 자세한 설명도 없었고요."
-시청률도 만족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살짝 부족해서 아쉬웠죠. 사실 4.8%라는 시청률이 어느 정도인지 못 느끼는데 주변에서 2·3루타는 친 거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최근 영화를 포함해 대중 앞에 나서서 좋은 결과물을 보여준게 없었어요. 라디오를 하면서 다시 반응이 왔고 '나쁜 녀석들'을 하고 나니 좋은 기운이 들어온다고 느껴요."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집과 촬영장만 오가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알아봐주더라고요. 20~30대 초반 사람들 중에는 박중훈이 연기하는걸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기 조금 하는 배우'라고 불린다고요.(웃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장면보다는 캐릭터 자체가 기억에 남죠. 극중 관계가 너무 얽히고 설킨게 많았어요. 드라마 출연 전체 배우 중 한두명을 제외하곤 모두와 만나다보니 관계성에 대해 생각해야할 게 많았죠. 이 사람과는 이렇게 또 저기선 저렇게. 그 관계성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죠."
-24년만에 드라마 현장은 많이 달라져 있던가요. "30년 넘게 연기하면서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르고 연기한 건 처음이에요. 끝을 모르고 한 거죠. 현장에서 제가 죽는다는 소문이 싹 돌았어요. 물론 저도 몰랐고요.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비참한 생각도 들더라고요. 당장 내일 상황을 모르니 '아 이러다 사라지나'라는 생각이요. 감독과 작가는 아는데 정작 배우인 본인은 모르니깐 답답하면서 비참했어요. 전체 시놉시스와 80% 대본은 받고 시작해야하지 않나 싶어요. 너무 낯설었어요."
-박중훈 씨 정도의 선배라면 제작진이 알려주지 않나요. "아니요. 마치 어느 가게의 영업비밀인듯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만드는 방식은 25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어요. 촬영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하는 만큼 찍더라고요.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언제 시작할지 혹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가버릴 순 없잖아요. 현재 시스템을 깨고 룰을 만들 순 없으니깐요. 신인의 자세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뱉은 말은 지켜야죠."
-촬영 종료하고 나서 제작진에게 얘기했나요. "그 때는 해도 된다고 판단해 말했죠. 사실 이해 안 되는게 몇 가지 있었어요. 집합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3시간 이상 기다린 적도 있고요. 12시 촬영이라고 하면 12시 전까지 무조건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갔는데 3시에 촬영이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건 선배라서가 아니라 일부러 시간 낭비할 필요 없는 거니깐요."
-영화계는 다른가요. "2000년대 초반 미국서 영화 작업하고 돌아와 '황산벌'이란 영화를 촬영할 때 '12시간 촬영 룰'을 만들었어요. 하루에 12시간 딱 정해놓고 촬영하자는 거였죠. 당시에는 그것 때문에 '미국물 먹고 잘난 척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충무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해야겠다는 소신이 있었고요. 그래도 그 행동이 이후 회자되면서 조금씩 달라졌고 몇 년 전부터 영화계는 제작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좋게 평가받고 있고요. 최근 일련의 일들을 보며 드라마계도 그런 시스템이 확립돼한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