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빙속의 혁신적인 '전환기'는 4년 전에 열린 2010 밴쿠버겨울올림픽이다. 당시 한국은 단거리의 모태범(29·대한항공) 이상화(29·스포츠토토) 그리고 장거리의 이승훈(30·대한항공)이 등장해 쇼트트랙에 집중됐던 한국의 메달 지형도를 바꿔 놨다. '밴쿠버 빙속 삼총사'로 불리며 한국 빙속의 간판스타로 떠오른 이들은 이후로도 단거리와 장거리에서 맹활약 중이다.
중거리는 얘기가 다르다. 한국 선수들은 단거리선수들이 주로 500m·1000m를, 장거리선수들이 1500m·5000m·1만m를 주로 타는데, 이 중 1500m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전문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김민석(19·성남시청)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기대주로 자리매김했다. '제2의 이승훈'이라는 수식어처럼 장거리 유망주로 시작한 김민석은 2014년 16세의 나이로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 정도로 재능이 넘친다. 일찌감치 세계 주니어 무대를 평정하며 가능성을 보였고,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에서 '국내 최고'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에 도전한다.
기록만 보면 메달 경쟁이 녹록지는 않다. 올림픽 시즌인 2017~2018시즌 김민석의 월드컵 1500m 최고 기록은 지난해 12월에 열린 3차 대회(캘거리)에서 기록한 1분43초49다. 이 기록은 김민석의 개인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데니스 유스코프(29·러시아)나 코헨 페르베이(28) 키엘트 누이스(29·이상 네덜란드) 조이 맨티아(32·미국) 등 1500m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은 지난 2월에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선수권대회(평창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때 김민석에게 5위라는 순위를 안겨 준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김민석은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고 빙질도 내게 딱 맞는다"며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패기 넘치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민석/연합뉴스
'깜짝 선전'을 노리는 김민석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1500m에 집중하기 위해 몸무게도 3kg 가까이 증량했다. 여느 때보다 메달 욕심도 크다. 1500m 국내 최강은 물론이고 2017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 때 이 종목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아 최고로 우뚝 섰다. 그러나 메달 후보의 이름을 꼽을 때 누구도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승부욕이 펄펄 끓는 19세 청년은 "메달 후보로 주목받지 못하다 보니 '뭔가 보여 주겠다'는 오기도 생긴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마침 이 종목 최강자로 꼽히는 유스코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출전 불허 결정으로 불참하는 '행운'도 겹쳤다.
메달 획득 여부와 별개로 김민석이 1500m에서 얼마나 인상적인 역주를 보여 주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김민석의 활약이 곧 한국 빙속 중거리의 '미래'기 때문이다. 제갈성렬(48) SBS 해설위원도 김민석의 활약을 전망하며 "깜짝 사고를 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주형준/연합뉴스
1500m 메달을 노리는 건 김민석만이 아니다. 2014 소치겨울올림픽 팀추월 은메달리스트인 주형준(27·동두천시청)도 있다. 주형준은 이승훈이 출전권을 넘겨준 덕분에 평창행 막차에 올라 다시 한 번 올림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민석과 주형준이 출전하는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 경기는 13일 오후 8시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