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가 '1세대 아이돌' 재결합에 정점을 찍었다. 흩어졌던 클럽 H.O.T.(팬클럽)가 다시 모여 세기말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17년 세월 동안의 '덕질' 공백을 2018년 방식으로 채우며 오빠들과 재회를 반겼다.
24일 MBC '무한도전-토토가3' 방송 이후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에는 H.O.T.가 실시간 검색어를 오르내렸다. 25일 새벽 3시 멜론 실시간 차트는 '빛' 26위, '행복' 48위, '캔디' 63위, '위 아더 퓨쳐' 83위 등 H.O.T. 히트곡이 줄을 섰다. 26일 정오에도 '빛'은 멜론차트 54위에 랭크하며 선전 중이다. 순위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줄곧 차트인을 유지하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토토가3' 무대영상이 인기 급상승 1위에 올라, 26만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기 아이돌이 치고 올라오는 시간대에 지하 깊은 곳에 숨었던 원조 아이돌의 차트 점령은 이례적이다. 이는 팬들의 '총공'(총공격의 줄임말, 음원사이트 스트리밍 등 팬들이 힘을 합쳐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의 힘이다. 과거 카세트테이프를 쌓아뒀던 3040 팬들은 이제 커뮤니티에 모여 음원사이트에서 히트곡을 스트리밍하고 묵혔던 추억을 꺼내고 있다. 특히 네이버 검색을 살펴보면 전국 직장인과 맘 커뮤니티 중심으로 버즈량이 급증했다.
일부 팬들은 "세기말 유물"이라며 향수·뱃지·사진 등 H.O.T. 굿즈를 꺼내놓기도 했다. 은행 앞에서 콘서트 티켓 입금을 위해 줄섰던 일화부터 군기가 바짝 든 것처럼 엄격했던 팬덤문화 등 다양하게 공유했다. 1020팬들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팬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난 15일 H.O.T. 공연장을 찾은 한 팬은 "워너원 팬인 딸과의 공통 관심사가 생겨서 즐겁다. 뭉클한 기분도 들고 소중한 추억을 되찾은 기분이다"고 기뻐했다.
멤버들 또한 17년만에 마주한 팬에 남다른 기분을 느꼈다. 문희준은 라디오 방송으로 "깨고 싶지 않은 꿈 같은 시간"이라고 웃었고 토니안은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22년 긴 시간 함께해줘서, 17년간 기다려줘서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셔서"라고 SNS에 적었다. 이재원은 "방송에서 너무 우는 모습을 보여드려 지질해 보인 건 아닌지 좀 민망하다. 공백기도 좀 있었고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도 감격스럽고, 무엇보다 17년 만에 다시 팬들 만나 뵙게 되어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들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 다음엔 좀 더 밝고 좋은 모습 만들어서 인사드리겠다. 멤버들 빨리 부상 완쾌되고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팬들도 저도 이젠 울지 말고, 웃는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다"고 감사인사를 남겼다.
김반야 평론가는 "30대 이후가 되면 새로운 노래나 장르보다는 기존에 들었던 음악 스타일만 듣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재 3040 세대가 음악을 가장 좋아했던 시절 향유했던 음악은 1세대 아이돌의 것"이라고 전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2015년 시작한 '토토가'라는 과거 코드가 지금까지 인기를 끄는 것이 놀랍다"며 "추억 회상은 인간의 보편적 욕구이기도 하지만,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특히 더 과거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복고의 끝나지 않는 인기는 그만큼 현재가 팍팍하다는 뜻일 수 있다"며 H.O.T.가 준 행복에 대해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