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가 가수로 복귀했다.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음악은 내 길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살았던 그가 35~40년만에 음악을 우선순위 1번으로 뒀다. 이장희는 "내 나이가 70세다. 이 나이에 다시 음악이라는 걸 한다는 것에 맞는 길인가. Am I on the right track?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복잡한 감정 속 설렘을 내비쳤다.
이장희는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이장희 울릉천국 아트센터 개관'과 함께 5월 공연 소식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안녕하십니까 울릉도에서 온 이장희입니다"며 호쾌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이어 "한강다리를 건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봄날이라는 생각도 들도 기분도 좋았다. 좋은 날 무슨 노래를 할까 하다가 1974년 고려대학교 신입생회에 초청을 받았을 때 불렀던 곡을 하기로 했다"며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를 불렀다.
1970년대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으로 국내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이장희는 2004년 울릉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터전을 잡고 거주하고 있다. 이장희는 "나는 1975년도 대마초 파동으로 가수들이 줄줄이 잡혀들어갈 때 내가 첫 번째였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까지 중퇴할 정도로 나는 음악에 미쳐살았다. 정말 미친놈이었다. 그렇게 다 해보니 현실을 순응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도 하고 레스토랑도 하고 교포사회를 위한 라디오도 진행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좋아하는 자연이 있는 울릉도를 찾아왔다"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압축했다.
이어 "2004년 은퇴를 하고 울릉도로 갔다. 농사를 하려고 갔는데 그때도 봄이었다. 더덕밭을 만들었는데 더덕보다 잡초가 더 잘 자란다. 잡초를 뽑는 게 일이다. 저 쪽가서 잡초를 다 뽑았다고 돌아보면 다시 시작점에서 잡초가 자라고 있다. 일생 내내 하는 게 잡초뽑기다"며 울릉도 일상을 소개했다.
이장희의 일상은 울릉천국 공연장 개관 후 또 달라졌다. 처음엔 평화를 깨는 일이라 생각해 꺼려했던 공연장 건립이지만, 이제는 공연장이 새로 생기면서 음악의 즐거움을 다시 알게 됐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음악을 우선순위 1번으로 둔 것이 1975년도 이후 처음이다"며 "새 앨범도 다시 만들고 싶다. 미국에서 7년 살다 1988년에 한국에 다시 살까 해서 준비를 했던 곡이 있다. 그걸 사장시켜두고 거의 못 듣다가 지난해 알래스카에 갈 일이 있어서 거기에서 들었다. 근데 '이게 내 마지막으로 하려고 했던 음악이구나' 하는 생각에 친근감이 들었다. 후배 뮤지션들에게 내가 노래 다시 녹음할 수 있게 연습실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오늘 그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장희는 울릉도 대표 명소가 된 농장 '울릉천국'을 직접 만들었고 해당 부지 약 500평을 울릉도에 기증하고 2011년 '울릉천국 아트센터' 첫 삽을 떴다.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으며 로고는 캘리그라퍼 강병인 작품이다. 전시홀에는 이장희가 보유하고 있던 쎄씨봉 자료 등으로 채워졌다. 이장희는 5월 8일 개관일부터 9월 15일까지 주3회 상설 공연을 개최하며 송창식, 윤형주 등 쎄씨봉 멤버들을 비롯한 다양한 뮤지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울릉도로 많은 사람들이 오길 바란다는 이장희는 "40년만에 친구들을 만나 음악하는데, 내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아실 것이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