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칸영화제 개최를 하루 앞둔 7일(현지시간)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이날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한 그는 ‘미투’ 운동이 촉발한 “세계의 변화에 발맞추겠다”면서 “상영작 선정위원단의 여성과 남성 비율을 개선하고 향후 여성 심사위원장과 여성 감독 영화를 더 많이 초청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와 올해 잇달아 칸을 찾은 로만 폴란스키‧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올해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겨루는 공식 경쟁 부문 21개 초청작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3편에 불과했다. 지난 70년간 황금종려상에 호명된 여성 감독은 1993년 영화 ‘피아노’로 수상한 제인 캠피온이 유일하다. 지난달 경쟁 부문 라인업 발표 후 칸영화제가 여전히 남성들만의 리그란 비판이 뒤따른 이유다.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수상작 선정은 성별보다 오직 예술성에 따라 결정될 것”이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영화계 내 여성의 대표성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이같은 지적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여성’은 올해 칸영화제 최대 화두다. 영화제 측은 지난해 ‘미투’ 운동의 계기가 된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칸에서만 4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공개되자 올해부터 영화제 기간 성범죄를 신고하는 전용 핫라인을 개설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성추문 연루 감독들에 대해선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일례로 2011년 나치 우호 발언이 문제가 된 후 7년 만에 칸영화제에 복귀하는 덴마크 거장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있다. 그는 지난해 가수 겸 배우 뷔요크에 의해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음에도 신작 ‘더 하우스 댓 잭 빌트’로 올해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지난해 말 뷔요크는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과거 덴마크 감독과 영화 촬영 중 감독의 수차례 성추행 시도로 고통 받았다고 토로했다. 지금껏 뷔욕이 함께 작업한 덴마크 감독은 200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둠 속의 댄서’를 함께한 폰 트리에가 유일하다. 이에 지난달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라스 폰 트리에의 귀환으로 칸영화제는 여전히 남성기득권에 속박돼 있음을 증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7일 기자회견에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미성년자 성폭행 등으로 지난주 미국 아카데미협회에서 제명당한 폴란드 감독 로만 폴란스키를 칸영화제도 제명할 것이냐는 질문에 “복잡한 문제”라며 얼버무렸다. 미국 등지에서 잇달아 성폭행 혐의를 받은 폴란스키 감독은 미국 당국과 형량 협상에 실패해 프랑스에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칸영화제는 지난해 그의 영화 ‘실화’를 비경쟁 부문에 초청하며 옹호적인 태도를 보여 비판받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올해 칸영화제는 개최 기간 ‘여성’과 ‘미투’를 둘러싼 담론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사위원장 케이트 블란쳇을 비롯해 경쟁 부문 심사위원 9명 중 5명이 여성으로 구성된 것이 수상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오는 12일 약 100명의 여성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레드카펫을 걷게 될 것이라고도 전했다. 제71회 칸영화제는 8일부터 19일까지 12일간 프랑스 칸 일대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