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은 우리나라 유일의 우주센터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남해안 청정 해안에 어울리는 고운 모래사장과 맑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있고 사계절 푸른 바람이 불어오는 산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노닐 수 있는 곳이 고흥이다. 온 가족이 흥겹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최근 고흥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섬들을 다양한 테마로 꾸몄다고 해서 멀리 고흥까지 달려갔다.
원시의 섬 '시호도'
시호도. 아마도 지명 이름에 이런 한자어를 쓰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주검 시(屍)'. 즉 시체를 뜻하는 '시'자를 사용해서다. 시호도는 '죽은 호랑이 섬'을 뜻한다.
전설이 있다. 무인도인 시호도에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타야 하는 마을은 구룡마을이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웠을 적에, 구룡마을의 아홉 마리 용이 시호도의 호랑이와 한판 붙어 호랑이를 물어 죽였다고 한다. 그렇게 된 섬이 바로 시호도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죽은 호랑이가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고흥군은 무인도인 시호도를 원시인이 돼 보는 색다른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섬으로 만들었다. 섬 안에 원시 체험 마을이 있다. 특히 시호섬에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물을 구룡마을에서 갖고 들어와야 한다. 무인도이기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물과 전기가 없다? 원시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섬이다.
체험객들은 구룡마을 선착장에서 2분 정도 배를 타고 시호도에 들어가게 된다. 시호도에 도착하면 우선 모든 휴대전화를 맡겨 둬야 한다. 원시 마을 입구에는 큼지막한 호랑이 모형이 체험객들을 맞이한다. 이때부터 진짜 원시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입촌식을 한 뒤 원시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부족 생활을 시작한다. 뗏목 체험, 낚시 체험을 할 수 있는 어부와 밭을 일궈 수확해야 하는 농부, 새총 및 활쏘기 체험을 해 보는 사냥꾼으로 나뉘어 각기 부족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부족별 체험 실적에 따라 식사가 제공되며,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원시 장터도 운영된다. 참가자들은 원시적 방법으로 불을 피워 지급받은 식량으로 알아서 식사도 해결해야 한다.
조용한 명상의 섬 '진지도'
진지도는 고흥에서 북쪽, 순천 쪽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섬이다. 군사 용어인 장비와 군사를 배치해 둔 '진지'를 섬 이름으로 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사연은 이렇다. 고려 말엽 수군만호가 이곳에 진지를 만들고 군사를 주둔시켰다고 해서 진지도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만호는 즉 집 1만 채를 다스리는 고려 수군의 관직이다. 하지만 총면적이 18만 평 정도밖에 되지 않고 해안선의 길이가 8㎞인 진지도에 집이 1만 호가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고흥군 본토에 있던 직책일 것으로 짐작된다.
무인도인 시호도와는 달리 진지도에는 6가구 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중을 나온 김정수(64)씨는 "예전에는 초등학교 분교가 있을 정도로 아이가 많았는데 지금은 전부 도회지로 떠났다"고 했다.
섬은 주변의 다른 섬에 비해 수면에 바짝 엎드려 있는 듯했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43m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은 섬에 10년 전쯤 만들어 놓은 생태탐방로도 있고 전망대도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멀리 고흥의 명산 팔영산과 여수와 순천만이 해무 속에 실루엣처럼 펼쳐졌다.
산책길을 따라 내려오니 잘록한 섬의 허리 부분에 널따란 잔디밭이 나타났다. 예전에 분교 운동장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광주광역시의 한 법무법인이 이 폐교를 사서 연수원 겸 직원 휴양시설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잔디밭 앞에 개인 해수욕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조그마한 해변이 나왔다. 바위 위에 앉아 살랑살랑 불어오는 갯바람을 맞으면서 찰랑찰랑거리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시원해졌다. 아마도 진지도는 이런 자연 속에서 조용하게 힐링할 수 있는 곳이어서 '명상의 섬'으로 불리는 듯했다.
섬 속으로 5분여를 더 걸어 들어갔을까. 진지도의 이름이 유래된 진지의 흔적이 나타났다. 고려시대 때 지어져 거의 허물어졌지만 어렴풋이나마 축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김정수씨는 "어릴 적에 이곳에서 밭을 갈 때 가끔 항아리나 화살촉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명상의 섬, 진지도도 조만간 개발의 바람이 불 듯하다. 고흥군과 한 업체가 섬을 개발한다고 해서다. 지난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호텔, 커피 테마파크, 오디오 뮤지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휴가 때 한번쯤 찾아가고 싶은 섬 '애도'
애도에는 지천으로 쑥이 널려 있어 쑥섬으로 더 잘 알려진 섬이다. 나로도항에서 손에 잡힐 듯 아주 가까이에 있다. 작은 섬이지만 섬 안에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매화를 시작으로 수선화, 양귀비꽃, 천일홍, 달리아, 접시꽃, 라벤더 등 300여 가지 꽃들이 사계절 내내 피며 꽃잔치를 펼친다.
쑥섬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6, 2017년 대한민국에서 가고 싶은 섬 33’에 속하기도 했다. 전남 1호 민간 정원이며 국내 유일의 해상 꽃 정원인 '별정원'이 있다. 또 200m 수국길, 다도해와 수평선을 함께 보며 트레킹할 수 있는 3km의 몬당길, 수백 년 된 돌담길, 남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난대수종 원시림 등이 있다.
쑥섬의 난대 원시림은 쑥섬 주민들이 신성시하던 곳으로 수백 년 동안 세월을 이겨 온 육박나무를 비롯, 어머니 모습을 한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외에도 남녀가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남자산포바위와 여자산포바위, 신선들이 내려와 쉬었다는 신선대와 대감바위, 일몰이 아름다운 성화등대길도 있다.
여행 정보 서울시청에서 고흥까지 차로 4시간 반 정도 걸린다. 시호도는 고흥 읍내에서 차로 30여 분 더 달려가야 한다. 시호도 입장료는 5000원(어른)이며 당일 체험료는 1인당 1만5000원이다. 1박 2일 캠프는 가족 캠프의 경우 1인당 3만5000원. 쑥섬은 나로도여객선터미널이 아닌 그 옆에 있는 작은 선착장에서 사양호를 타고 들어간다. 왕복 3000원이며 하루에 6번 운항한다. 쑥섬 탐방비는 1인당 5000원으로 배에서 내려 섬 입구의 무인통에 넣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