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월 15일.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가 서울 여의도 럭키금성 빌딩에서 창단식을 갖고 새 출발을 알렸다. 초대 지휘봉을 잡은 백인천(75) 당시 LG 감독은 초대 구단주 구본무 회장과 첫 만남을 아직도 기억한다. 백 감독이 "야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자, 구 회장은 "알겠습니다"라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38년이 훌쩍 지났지만 백 감독은 "당시 구단주님과 첫 만남, 첫마디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야구를 사랑한 기업인' 구본무 회장이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 구본무 회장은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1995년 그룹 회장에 오르기에 앞서 1990년 창단한 LG 트윈스 초대 구단주가 바로 구본무 회장이었다. 이후 2007년까지 LG의 구단주를 맡았다. 1년에 몇 차례씩 직접 경기장을 찾아 트윈스를 응원했고, 생전에 일본 오키나와현에서 열린 LG의 스프링캠프를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다. 경남 진주 단목리에 있는 외가로 LG 선수단을 초청하는 '단목 행사'를 개최해 우승 기원 고사를 지냈고, 선수단의 화합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가 구단주를 맡았던 시절, LG는 1990년과 1994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특히 1990년, LG는 창단 첫 시즌에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리던 해태의 독주 체제를 끊었다. 사상 첫 서울팀 우승이다. 그전까지 영남, 충청, 호남에서만 우승팀이 나왔다. LG의 약진으로 KBO 리그는 처음으로 3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한국 프로야구 30년사는 1990년 LG의 우승을 이렇게 회고한다. "LG의 우승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극적이었다. 백인천 감독의 리더십은 구본무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됐기에 더욱 강력했다"고 한다.
LG가 흔들릴 때도 구본무 회장은 선수들을 전폭 지원했다. LG는 1990년 6월 3일까지 14승22패로 꼴찌였다. 4월 22일 잠실 한화전~5월 5일 잠실 롯데전까지 6연패, 5월 9일 잠실 두산전~5월 19일 대구 삼성전까지 7연패를 당했다. 백인천 감독과 LG를 향한 여론은 상당히 나빴다. 1988년 MBC 청룡 소속으로 신인왕을 탔고 당시 LG에서 활약하던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당시 식사 자리에서 구본무 회장님이 감독님께 '주변 이야기에 너무 흔들리거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야구하면 된다'고 독려했다"고 귀띔했다. 백인천 감독도 "당시 동계훈련을 엄청 혹독하게 치른 탓에 초반 성적이 안 좋았다. 개인적으로 예상했던 바였다"면서 "구 회장님께서 '괜찮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야구단 성적에 일절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아마도 야구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셨을까 싶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모 그룹의 입김에 야구단이 굉장히 흔들렸던 시절이다. 그해 6월 8연승하며 상승세를 탄 LG는 전반기를 4위로 마친 뒤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을 확정했고,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1~4차전을 모두 잡고 창단 첫 시즌 통합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구본무 회장은 선수단을 위한 지원과 보상에도 상당한 힘을 보탰다. 당시 프로야구 선수들은 연봉 상한선 25% 제한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연봉 인상 폭을 전년도 연봉의 25%로 제한했다. 예를 들어 MBC 김건우는 1986년에 1200만원을 받으면서 18승을 올렸지만, 이듬해 연봉이 불과 300만원 올랐다. 당시 구단에선 따로 보너스를 챙겨 주곤 했다.
그런데 이 제도는 1990시즌이 끝난 뒤에야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이용철 해설위원은 "당시 구본무 회장의 지시로 LG가 먼저 규정을 깨뜨리자 그동안 쉬쉬하던 다른 구단들도 점차 연봉 상한선 제한을 깨고 따라왔다"고 회상했다. 백인천 감독도 "당시 우승 축하연에서 '(구본무 구단주님께서) 어떻게 축하하면 되겠나?'라고 물으셔서 '월급을 많이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우리 선수단의 연봉이 많이 올랐다"고 회상했다.
20일 잠실 LG-한화전은 응원단 없이 조용히 치러졌다. 선수 등장곡과 앰프 사용, 치어리더 응원 없이 육성으로만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