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칸 국제영화제가 12일간의 축제를 마무리 지었다. 올해 한국 영화로 유일하게 경쟁부문에 진출한 '버닝(이창동 감독)'은 본상 수상이 최종 불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을 받는데 그쳤다. 최고 영예 황금종려상은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에게 돌아갔다.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꿈의 무대에서 한국 영화는 올해도 반짝반짝 빛났다. 3연속 경쟁부문 진출에 성공했고, 칸 영화제라는 어마어마한 무대를 통해 발견된 스타도 있었다. 거장은 거장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고, 생애 한 번도 밟기 힘들다는 무대 위에서 충무로를 쥐었다 폈다 하는 그 대단한 배우들도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마켓도 호황을 이뤘다. 해외 바이어들의 끊임없는 발걸음은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과 신뢰를 엿보이게 했다.
황금종려상 '만비키 가족' 어떤 영화? 올해 칸 영화제는 어느 때보다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3개국 영화가 모두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등 경쟁부문에 오른 21편의 작품 중 아시아 영화만 무려 8편이 배치됐다. "황금종려상도 아시아 영화가 가져가지 않겠냐"는 반응이 상당했고, 결과에 이변은 없었다.
'만비키 가족'은 좀도둑질로 살아가는 가족이 갈 곳 다섯 살 소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의 '만비키'는 물건을 사는 척 하면서 훔치는 좀도둑을 뜻한다. 릴리 프랭키·안도 사쿠라·마츠오카 마유·이케마츠 소스케·키키 키린이 열연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국내 이창동·박찬욱 감독 못지 않게 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칸의 남자'라 불리우는 그는 '디스턴스'(2001)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만비키 가족'(2018)까지 경쟁부문에만 5번 입성했고, 언젠가는 받을 것 같다고 여겨진 황금종려상을 드디어 품에 안았다.
일본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 이후 21년 만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야기라 유야가 남우주연상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을 받은데 이어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며 세계적 무대의 가장 높은 위치에 당당히 올라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기가 빛을 발한 '만비키 가족'은 따뜻한 가족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작품으로 영화제 기간 내내 주목 받았다. 가족을 만드는 것이 핏줄인지, 함께 보낸 시간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상영 후 8분 여 동안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의 존재 가치와 영향력, 감독의 색깔을 모두 잃지 않은 '만비키 가족'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견이 없는 이유다. 뜨겁게 불타오른 '버닝' 위로받은 '2관왕' 수상 불발의 아쉬움보다 자랑스러움이 더 크다. 이창동 감독은 8년만의 복귀작을 통해 거장의 건재함을 전 세계 영화인들 앞에 증명시켰다.
'버닝'은 16일(현지시간) 칸 현지에서 공식 스크리닝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후 스크린데일리 3.8점(역대 최고점·4점 만점) 아이온시네마 3.9점(5점 만점) ICS(인터내셔널 시네필 소사이어티, International cinephile society) 4.83점(5점 만점) 등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 중 최고점을 싹쓸이 했다. 하지만 평점과 수상은 역시 무관했다.
일각에서는 '사전 최고점을 받은 것이 본상 수상에 역효과로 작용했고, 평론가 한 명 없이 여성 5명에 남성 4명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단도 최대 변수가 된 것 같다'는 반응도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영화의 운명이다.
심사위원의 눈에 1등으로 들지는 못했지만 거장 사전에 '빈 손'은 없었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이 수여하는 국제비평가연맹상은 '버닝'의 차지였고, 신점희 미술감독은 힌국 영화인으로서는 두번째 벌칸상(The Vulcan Award of the Technical Artist)을 받았다. 따뜻한 위로가 된 '2관왕'이다.
이창동 감독은 "감사하다.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미스터리다. 여러분이 그 미스터리를 안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감독과 마지막 일정까지 함께 한 유아인·스티븐 연·전종서는 각자에게 의미있는 칸 영화제를 치렀다. 데뷔 15년차 유아인은 생애 처음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으면서 그간 호불호를 떠나 배우로서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스티븐 연은 지난해 '옥자(봉준호 감독)'에 이어 2년 연속 경쟁부문 주역으로 칸 영화제에 참석하는 기염을 토했고, 전종서는 칸 무대를 데뷔 무대로 만들었다.
"잘했다, 韓영화!" 눈물의 꿈의 무대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공작(윤종빈 감독)'은 데뷔작이자 첫 장편 영화였던 '용서받지 못한 자'(2006)로 59회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데 이어 10여 년 만에 다시 칸을 찾았다. 윤종빈 감독을 제외하고 황정민·이성민·주지훈 모두 생애 첫 칸 영화제를 경험했다. 긴장과 설레임이 가득한 표정 속 레드카펫을 밟은 배우들은 상영 후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공작'은 흑금성 사건을 다룬 한국형 첩보영화다. 현재 남북정세와 맞물리면서 기가막힌 타이밍을 등에 업고 전 세계 영화인들 앞에 소개돼 의미를 더했다.
15년간 무명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배우가 칸 영화제라는 어마어마한 무대에서 눈도장을 찍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러시아 영화 '레토'로 경쟁부문 레드카펫을 밟은 한국 배우 유태오다. "우리에게 이런 배우도 있다"는 자랑을 유태오는 스스로 해냈다. 유태오는 2000대 1의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 극중 러시아 영웅 빅토르 최를 연기했다. 유태오는 "꿈만 같다"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진심을 표했다.
'버닝'부터 마동석까지…마켓 호황 마켓도 신났다. 경쟁부문 진출작 '버닝'은 상영 전부터 화제였다. 프랑스를 비롯해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판매가 완료 됐다. 프랑스와 중국, 홍콩, 마카오 등 아시아 8개국도 '버닝'을 사갔다.
위안부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허스토리'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마켓 상영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특히 아시아권, 중화권 관계자들은 상영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한국형 크리쳐무비 '물괴'도 미국, 중국 및 유럽과 아시아 국가에 선판매 됐다. 물괴의 강렬한 비주얼이 담긴 포스터부터 시선을 압도했다. 작품이 아닌 배우에 집중된 경우도 있다. 마동석은 칸 마켓에서 한국영화 간판스타로 꼽힌다. 69회 칸 영화제를 뒤집어 놓은 '부산행'의 영향이 크다. 그간 출연한 작품부터 차기작까지 지지를 얻었다. 송강호도 각광 받았다. '택시운전사' '밀양' '박쥐' 등을 비롯해 차기작 '마약왕'도 소개됐다. 아시아 주가가 높아진 하정우는 'PMC'가 주목 받았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 칸(프랑스) 박세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