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연기였다. 포기한 것도 여러 번. 호주로 떠나 페인트 칠까지 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놓지 못한 연기의 끈이다. 타고난 운명은 무시할 수 없다. 무명 세월이 아무리 길었어도 김희원(47)이 있어야 할 곳은 무대 그리고 현장이었다.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그렇게 버텨낸 전쟁터에서 김희원은 끝내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대표작까지 품게 됐다. 배우 김희원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아저씨(이정범 감독·2010)'와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팬덤 현상을 불러 일으킨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2017)'은 김희원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잊지 못할 명작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김희원에게 '친근함'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예능 프로그램은 옵션 선물이다.
"뭐 예상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일약 스타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며 껄껄 웃는 김희원은 '더 많이 달리고, 더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는 포부와 겸손함을 여러 번 내비쳤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우침은 김희원을 일희일비하지 않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여전히 많다. 주연급으로 올라선 만큼 남다른 책임감과 부담감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지만, 김희원 인생에 '자만심'은 다소 먼 단어다. 후배들에게도 사기를 꺾지 않는 선에서 몸소 체득한 세월을 아낌없이 털어 놓는다. 츤데레 성격이 빛나는 유머러스한 선배. 알면 알 수록 깊이감이 느껴지는 배우 김희원이다. - 어느 때보다 편안한 모습이다. "피곤해 보이지 않나. 사실 잠을 못 잤다. 매일 새벽 2시에 자는 것이 습관이 돼 오전 일정은 힘들 때가 많다. 극단에서 공연할 때 습관이다. 요즘에도 자주 보는데 끝나면 10시 반 정도 되고, 밥 한끼 하고 집에 가면 기본 1시다. 그러다 씻고 준비하고 자면 2시다. 잠이 잘 안 와 수면제를 먹기도 하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무서워서 천연 수면제로 바꿨다. 잘 안 맞긴 하더라.(웃음) 화학 수면제가 낫다."
- 오해받는 경우도 있겠다. "눈을 보면 대부분 늘 빨갛다. 예전에는 현장에 가면 무조건 '술 마셨냐'고 물어봤다. 요즘엔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서 '어디 아프냐'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수면 방법을 고쳐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많은 편인가. "늘 많다. 그래서 어떤 작품이 사회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집중적으로 더 관심을 갖기는 하지만 새롭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창작극이라 해도 100% 허구가 될 수는 없다. 사회 문제를 담은 작품은 더 리얼한 부분이 있겠지. '이건 말도 안돼!'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 신 스틸러로 불린다. "좋다. '신 스틸러', '명품 조연' 그런 수식어가 처음에는 낯간지러웠다. "예, 제가 신스틸러입니다!' 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물론 듣는건 좋다. 기자 분들이나 누군가 만들어준 단어이기 때문에 싫어할리가 있나. 듣기는 좋지만 직접 말하기는 힘들 뿐이다."
- 책임감이 더 커질 것 같다. "부담감은 항상 있는 것 같다. 칭찬을 받기 전에도 그럤다. '못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연기를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떠나지 않는다."
- 넘어서야 할 꼬리표는 '악역'이다. "확실히 '아저씨'가 오래 가는 것 같다. 요즘에도 '방탄유리'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언제까지 방탄유리냐' 하면서도 솔직히 언제까지고 계속돼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라는 배우를 기억해 주는 자체가 행복한 일이니까. '아저씨'가 됐든, 다른 영화로 이슈가 되든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이제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
-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계기는 없었다. 평소에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아저씨'가 개봉했을 때 난 내가 일약 스타가 될 줄 알았다. 주변에서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더 그랬다. 근데 현실은 아니었다. 괴로워 하기도 했다. 근데 그런 시간을 여러 번 보내면서 '어차피 인생은 길어. 천천히 가도 돼. 일희일비 하지 말자'고 정리가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