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축구팬들의 성대한 축제가 15일(한국시간) 0시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개최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32일 간 대장정에 돌입한다. FIFA에 가입한 6개 대륙 211개국 중 오직 32개국만 초청받은 말 그대로 ’선택받은 자들의 축제’다.
그리고 한국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쓰며 이란· 호주· 일본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에 이름을 올렸다.
신태용(49)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2일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를 떠나 러시아에 입성했다.
그러나 이 영광스러운 축제를 앞두고도 팀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아있다. 국내외에서 치른 4차례 평가전에서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낸 탓에 팬들의 비난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감독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기에, 전세기편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채널인 FIFA TV와 인터뷰에서 "선수단이 세네갈전을 지고 와서 조금 분위기는 가라 앉아있다"며 "스웨덴전까지 시간적 여유가 일주일 정도 있는데 그 기간 안에 충분히 훈련하고 다져서 첫 경기를 멋있게 승리로 장식할 수 있도록 준비 잘하겠다"고 팬들의 마음을 달랬다.
삼엄한 보안 태세 속에 짧은 인터뷰를 마친 신태용호는 곧바로 베이스 캠프인 뉴 페터호프 호텔로 이동했다. 이전까지의 월드컵과는 사뭇 다른 입성 현장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때까지만 해도 각국 대표팀은 공항을 통해 이동할 때마다 자국 언론과 인터뷰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선 FIFA의 방침에 따라 일반인은 물론 언론도 접근할 수 없는 별도의 게이트를 통해 이동, 철저하게 안전 위주로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신태용호가 베이스 캠프를 꾸린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공항부터 도로 위까지 곳곳이 엄중한 경계태세였다. 게이트마다 공항 보안검색대를 방불케 하는 철저한 보안 검색이 이뤄졌고 무표정한 얼굴의 러시아 경찰들은 월드컵 취재진과 관람객을 노린 소매치기를 잡아내기 위해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현지 교민들의 환영 행사는 신태용호가 머무는 호텔에서 치러졌다.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와 권동석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 현지 교민 등 약 150명의 환영객이 붉은 티셔츠를 맞춰입고 호텔 앞에서 대표팀을 기다렸다.
안전을 우려한 FIFA와 현지 당국의 권유로 당초 야외에서 치러질 예정이던 환영 행사가 실내로 변경되기도 했으나, 신 감독과 코치진은 한국 축구를 응원하기 위해 호텔까지 찾아온 팬들과 파이팅을 외치며 함께 사진을 찍고 감사함을 전했다.
당장 월드컵이 개막을 맞았지만, 신태용호의 ’본 경기’가 될 스웨덴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13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입성 후 첫 훈련을 갖는 신태용호는 오는 18일 열리는 스웨덴전까지 100%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 때 컨디션 관리에 실패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는 만큼, 신 감독과 코칭스태프, 대한축구협회가 가장 신경 쓴 부분도 바로 여기다.
특히 ’해가 지지 않는 땅’이라 불릴 만큼 백야 현상이 심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자정 무렵이 되어야 겨우 해가 지고 새벽 4시면 해가 뜨는 백야 현상 때문에 선수들이 잠을 설칠까봐 베이스 캠프 호텔에 비용을 지불하고 암막 커튼도 새로 달았다. 직접 시설 점검을 나섰던 신 감독의 요청이었다.
물론 아무리 철저하게 대책을 세웠다고 해도, 선수들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낸 첫날 밤은 쉽게 잠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전의 땅을 밟았다는 설렘과 자정이 넘어도 밝은 밤하늘의 ’백야’, 그리고 비난과 불신 속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신태용호의 월드컵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