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출범부터 올해까지 KBO 리그 사령탑에 오른 감독은 총 76명(대행 포함)이다. 그동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감독이 있었던 반면 시즌 중에 성적 부진으로 중도 퇴진한 감독도 많다.
전력이 좋은 팀의 지휘봉을 잡은 사령탑은 운이 좋은 감독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사령탑으로 단명한 감독 중에서 유능한 능력을 지녔지만, 팀 전력이 워낙 약해 일찍 물러난 경우도 꽤 있었다. 이후 재기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감독도 많다.
일찍 물러났다고 해서 무능한 감독일까. 한마디로 평가하기 어렵다. 팀 전력이 약하면 이기는 경우보다 지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요즘에는 외국인 선수 3명을 잘 뽑으면 가을 야구를 충분히 넘볼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무게감이 있는 FA(프리에이전트) 선수를 데려오면 안정적인 4위권까지 가능하다. 실제로 지금까지 대부분 그랬다.
그렇지만 똑같은 전력으로 144경기 지휘봉을 맡겨 감독의 능력을 평가할 순 없다. 그래서 통상 한국시리즈 우승을 많이 차지한, 이기는 경기를 더 많이 했던 감독이 좋은 사령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서 얘기했듯 팀 성적만 놓고 지도력이 뛰어난 감독과 무능한 감독을 나눌 순 없다. 엄연히 전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FA 영입 등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팀은 당연히 좋은 성적을 올려야만 한다. 이런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고 해서 '팀이 잘했다' '감독이 잘했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좋은 감독이란 야구다운 야구를 하는 감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팀이 수비하고 있고, 상대 벤치에서 낸 작전을 간파하고 막을 때 '야구다운 야구' '야구의 묘미를 잘 보여 주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요즘 젊은 감독(40대 4명·50대 6명/유영준 NC 감독대행 체제 포함)들은 승패를 떠나 좀 더 깊이 있는, 야구다운 야구를 보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 시즌 10개 팀 중 'LG가 가장 야구다운 야구를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류중일 감독을 비롯해 수비, 배터리코치 등이 상대 작전을 간파하고 피치아웃시키는 장면 등이 인상 깊었다. 상대 벤치의 의도를 끊으려는 노력과 움직임이 돋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섣불리 작전을 낼 수 없다. 이런 수 싸움에 능한 지도자가 유능한 감독이 아닌가 싶다.
좋은 감독의 조건에는 좋은 선수 발굴, 기용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과거에는 이순철과 이종범, 현역 선수로는 정근우와 이용규(이상 한화) 등이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들이다. 이런 야구 센스를 타고난 선수도 있겠지만 그런 선수를 발굴하고 가르치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능력에 해당한다. 감독은 능력 있는 코치를 기용하는 위치에 있고 선택권을 쥐고 있다.
감독은 최소 300승-300패는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팀 전력이 좋을 때와 안 좋을 때를 모두 겪어 보고 느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야구를 다 알지 못하고 끝난다. 아무리 많이 이기고 우승해도 쓴맛을 보지 못한다면 진짜 야구다운 야구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