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 멕시코와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인 22일(현지시간), 공식 기자회견을 취재하기 위해 로스토프 아레나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현지인 택시 기사는 한국 기자들의 얼굴을 흘끔 보더니 운전 도중에 한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우리에게 내밀었다. 번역 어플을 사용해 만든 한 문장이 바로 저것이었다. "한국 대통령이 정말 여기에 오나?"
"프레지던트 문?"이라 되묻자 택시 기사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답해주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도리어 궁금증이 생긴 기자는 "한국 대통령이 여기 온다는 사실에 관심이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마찬가지로)번역 어플을 사용해 물었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뭔가를 길게 설명하려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우리는 그가 푸틴과 만날 거란 걸 알고 있다"는 문장으로 답변을 돌려줬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러에 로스토프나도누가 포함된 사실은 공식 인구 120만 명, 실제 인구 200여 만 명 추산의 이 중소 도시를 설레게 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을 가장 원하는 나라가 러시아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들도 있지만 '친한(親韓)' 분위기가 감도는 로스토프나도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을 반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로스토프나도누 시내에서 만난 돈 국립기술대학교 언어학과 한국어 강사 백두성(46) 씨는 "로스토프나도누는 교민은 거의 없지만 고려인이 3만 명 넘게 살고 있는 지역이다. 오리온 등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있고 한국으로 취업한 사람들도 1000여 명이 넘어 한식당도 있고, 밀키스가 최고 인기 음료일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로스토프나도누에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건 역시 방탄소년단(BTS)이나 빅뱅 같은 아이돌 그룹이다. 백 씨와 함께 '한국 홍보' 자원활동에 나선 한국 교육원 학생 러시아인 리카(20) 씨는 BTS의 팬이다. 로스토프나도누 시내 곳곳에선 머리를 아이돌처럼 물들인 청소년들이 공원에 모여 BTS나 빅뱅의 노래를 틀어놓고 춤 연습을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인 스베따(20) 씨처럼 한국 취업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많다. 로스토프나도누에 소재한 한국 교육원에서 한국어 강사를 겸임하고 있는 백 씨는 "한국 교육원에서만 600여 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 교육원을 통해 한국어를 배운 러시아인들은 한국-멕시코전이 열리는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자원봉사자로 맹활약 중이다.
이처럼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한국 교육원은 한국과 러시아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류에 관심있고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러시아인들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백 씨는 "김대중 정부 때 이 곳에 한국 교육원이 생겨 러시아에 한국을 알리는 큰 역할을 했다"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지원이 끊겨 문을 닫을 뻔 했다가 이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활력을 찾았다"고 귀띔했다.
이전 정권 10여년 간의 체제 때보다 한국으로 통하는 길이 넓어졌단 건 러시아인들, 특히 한국에 관심이 많은 러시아인들도 느낄 수 있는 사실이다. K-POP과 한국 문화에서 월드컵이라는 특별한 축제,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까지 이어지면서 로스토프나도누 사람들은 꽤 설레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러시아전 암표가 한화로 30만원을 웃도는데 평균 월급 60만원의 현지인들 중에서도 이 경기를 보러가기 위해 기꺼이 암표를 사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물론 광적인 3만여 명의 멕시코 관중과 일당백으로 싸워야하는 붉은 악마로선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을 응원해주는 현지인들도 모두 반갑고 든든한 지원군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