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대기록을 세운 소회였다. 답변은 거듭 소속팀을 향한 애정으로 귀결됐다. 데뷔 20년 차 베테랑 이진영(38·KT)은 그저 팀만 생각한다.
이진영은 6월 30일 수원 NC전에서 대기록을 세웠다. 0-0이던 5회말 무사 2루에서 상대 선발투수 이재학으로부터 우중간에 떨어지는 2루타를 치며 통산 3000루타를 넘어섰다. 역대 13번째 기록이다. 지난해 6월에는 통산 2000경기 출장-2000안타를 세웠다. 리그 역사를 대표하는 타격 장인으로 인정받았다.
영욕이 교차하는 길을 걸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보여준 활약 덕분에 '국민 우익수'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SK 소속으로 우승 트로피도 들어올렸다. 퇴물 취급도 받았다. 2015년 11월 진행된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보호선수 명단(40인)에서 제외됐고, KT로 이적해야 했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 탓에 출전 기회도 점차 줄었다. 그렇게 프로 무대에서 스무 번째 시즌을 맞았다. 버텨탰고 대기록이 따라왔다.
이진영은 기록 달성에 담담하다. 그저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말만 거듭 강조했다. 의미 있는 숫자가 후배들에게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KT가 좋은 팀으로 성장하는데 모든 기운을 쏟고 있다. "나도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말이다.
- 역대 13번째로 3000루타를 달성한 선수가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야구를 한 덕분에 따라온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팀 승리에 기여하는 안타로 해내서 더 기뻤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럽다. 안타, 홈런이 망라된 누적 기록이다.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선수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덕분이다.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하다.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 기록을 의식했나.
"물론 기록에 다가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 같은 자세로 나섰다. 후속 타순에 황재균과 박경수가 있었다. 팀 배팅을 염두에 뒀다. 결과적으로는 안타가 나왔지만 기록 달성을 염두에 둔 타격은 아니었다." - 무사 2루였다. 공격적인 타격이 문제되지 않는 상황이다.
"어느 순간부터 개인보다 팀이 먼저라는 생각이 커졌다. 의미 있는 기록을 앞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한준, 박기혁, 박경수 등 모든 베테랑이 팀이 이기는데만 집중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같은 생각이다. 경험이 많은 선수가 미치는 영향은 비단 출전 여부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귀감이 될 수 있는지를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는 더욱 그렇다."
- 지난해는 2000경기 출전과 2000안타 달성을 해냈다. 행보 자체가 후배들에 귀감이 된다.
"나도 좋은 선배들과 함께 야구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대기록이 나오면 존경심도 생겼다. '좋은 선수가 돼서 후배들에게 내가 느낀 기운을 주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됐다. KT에는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수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선수로 성장하도록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 프로 무대에서만 20번째 시즌이다. 이진영에게 타격이란.
"비슷한 연차가 쌓인 선수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쉽고 재미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항상 어렵다. 가장 어려운 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는 것이다. 투수의 보직과 유형이 다양해졌고, 전력 분석도 내가 신인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다. 외인 투수의 수준뿐 아니라 국내 투수도 발전했다. 구속도 빨라지고 변화구도 다양하다. 모든 변수에 맞춰서 내 타격, 내 야구를 지켜내는 건 너무 어려웠다."
- 타격자세가 정석은 아니다. 콘택트 능력은 뛰어나다. 비결이 있나.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 '어떻게 저런 스윙으로 타격을 할까'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결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폼이 정석이 아니라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준비 과정이다. 3~4년 차에 확실한 지향점을 정립했다. 나도 아마추어 때는 4번 타자로도 나섰다. 그러나 프로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콘택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배트 중심에 맞추는 방법만 고민했고, 현재 타격자세가 만들어졌다. 스텝을 밟지 않는 스윙이 대표적이다. 배팅 훈련 때도 멀리 치려 하지 않는다.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가운데로 뻗도록 집중한다."
- 장타력 향상을 지향점으로 삼는 젊은 선수가 많다.
"대체로 홈런도 많이 치면서 3할 타율도 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타자는 많지 않다. 스스로 방향을 정할 만큼 경험이 쌓여야 한다. 자기 장점을 찾지 못하거나, 지향점을 정하지 못한 후배들은 대체로 성장이 더뎠다. 고참급이지만 기술 조언은 해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코치님들이 계시다. 그저 더그아웃과 클럽하우스에서 수 싸움, 마인드 컨트롤에 대해 얘기해준다. 솔직히 교과서 같은 타격 자세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연습 때 어떻게 배트 중심에 공을 맞출 것인지 고민하라'는 말은 빼놓지 않고 해준다."
- 통산 '최다 출장' 보유자 정성훈은 벤치 멤버가 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자세가 생겼다고 했다.
"내가 (정)성훈이 보다 먼저 팀을 옮기지 않았나. 출전 기회도 전성기보다 크게 줄은 게 사실이다. 모두가 마찬가지 아닐까. 당황스럽고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감독, 코치님이 잘 봐주셔서 선배들이 지키던 자리에 나설 수 있었다. 선배들을 실력으로 압도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후배라면 당연히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팀에도 도움이 된다. 젊은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으면 팀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선배들과 경쟁하는 구도가 많은 팀이 건강한 것이다. 물론 경쟁할 수준의 실력을 갖추지 못한 선수가 자리하면 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선수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 20년 차 이진영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KT는 약팀으로 평가된다. 악착같이 잡고 가려는 상대 팀도 많다. 우리는 약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경기가 거듭되면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다. 꼴찌가 1위를 이길 수 있는 게 야구다. 강팀을 이기면서 팀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가장 즐겁다."
- 유독 베테랑의 역할과 팀의 승리를 많이 강조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다. LG에 있을 때는 내가 잘해야 팀 안에서 영향력을 높일 수 있었다. 현재 KT는 특정 선수의 실력만으로 이길 수 있는 팀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의 영향력보다 다수의 조화가 필요하다. 팀워크가 강한 팀이 돼야 강팀에 맞설 수 있으며 조금이라도 경험이 많은 내가 그런 팀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일 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젊은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다. 이 선수들의 성장을 보는 것도 내 즐거운이다."
- 팀 애착도 크다.
"팀과 선수도 궁합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선수도 힘이 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KT에서 내가 갖고 있는 역량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내 자존감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어려운 후배들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경직된 문화도 아니다.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고민하는 후배도 있다."
- 자극제는 있나.
"나이가 아닐까. 선배들 가운데는 나보다 오래 뛴 선수도 많다. 아직 소외될 나이는 아닌 것 같고, 경쟁력도 있다고 본다. 베테랑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려니 한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출전하게 되면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한다. 나를 압도하는 후배가 나오면 당연히 자리를 내줘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