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국 러시아의 8강 돌풍,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최고 성적을 기록한 크로아티아의 투혼,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던 잉글랜드의 추락, 그리고 '신계'를 호령하던 '메날두' 리오넬 메시(31·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레알 마드리드)의 쓸쓸한 퇴장… 이처럼 수많은 얘깃거리를 남기고 16일 결승전을 끝으로 폐막했다. 한 달여 동안 전세계를 축구의 힘으로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은 이제 4년 뒤 카타르 대회를 기약하며 긴 휴식에 들어간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조별리그 1승2패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1, 2차전에서 스웨덴과 멕시코에 연패할 때까지만 해도 대표팀을 둘러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으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우승후보 독일을 2-0으로 제압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언론이 모두 한국의 독일전 승리를 대회 최고의 이변으로 꼽으며 화제로 삼았고, 미국 야후 스포츠는 이 경기를 러시아 월드컵 명장면 2위로 꼽았다. 아시아 국가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 내의 팀을 월드컵에서 쓰러뜨린 건 한국이 최초다.
상상치 못한 대패, 탈락 후 구설수에 오른 대표팀 상황 등으로 귀국장에서 '엿'이 날아들었던 4년 전과 달리 이번 대표팀을 평가하는 시선에는 변화가 생겼다. FIFA 랭킹 1위 독일을 거꾸러뜨린 마지막 승리가 남긴 여운 덕분이다. 그러나 한국이 16강 진출이라는 목적 달성에 실패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한 뒤 2대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에 그쳤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1무2패,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선 1승2패였다. 월드컵 16강을 목표로 준비해 온 대한축구협회(KFA)의 입장에선 명백한 실패고, 책임과 반성이 필요한 결과다.
KFA는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서있다. 4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준비해야 할 것은 아주 많다. 두 차례의 연이은 실패를 만회해야 하는 과제는 물론, 월드컵에서 불거진 한국 축구 회의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아시아의 강호라도 월드컵에선 변방에 불과하다는 뼈저린 현실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전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한다는 32개국이 모여 치르는 대회가 바로 월드컵이다. 일관성 있고 지속성 있는 팀 만들기를 통해 4년 동안 확실한 팀 컬러를 만들고 경험을 쌓아 도전해야만 전세계 강호들과 겨뤄볼 만한 최소 조건을 갖출 수 있다.
이 모든 준비를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감독 선임이다. KFA는 월드컵 기간만 되면 성적에 대한 압박과 비판적인 여론 속에서 '버티기'로 일관하다 뒤늦은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기 일쑤였다. 당장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 두 대회 모두 월드컵 1년 전 감독을 긴급하게 교체하면서 부담을 자초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49) 현 KFA 전무이사, 그리고 신태용(48) 현 대표팀 감독 모두 부진한 성적에 '국민 욕받이'로 전락했다. 이 점을 두고 축구계 관계자들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감독들이 소모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KFA는 김판곤(49)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을 중심으로 차기 사령탑 선임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수많은 후보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과 달리, 아직 뾰족한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이 조별리그 탈락 후 귀국한 지 벌써 보름 가까이 지났는데 여전히 뚜렷한 후보가 없다. 대회 직전에 훌렌 로페테기(52) 감독을 경질하고 페르난도 이에로(50) 감독을 긴급히 선임했다가, 대회가 끝나고 이에로 감독이 사임하자 그 다음날 곧바로 루이스 엔리케(48) 감독을 선임한 스페인축구협회의 발빠른 대처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비록 협상에서 거절당하긴 했으나 위르겐 클린스만(54) 아르센 벵거(69) 등 유명 외국인 감독들과 일찌감치 접촉했던 일본축구협회와도 차이가 뚜렷하다. 4년 뒤 한국이 가야 할 '월드컵 로드'의 첫 걸음이 더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