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내야수 최영진(30)은 TV 중계를 통해 자신이 뛰는 모습을 지켜볼 아버지를 떠올리며 행복하다. 그는 투병 중인 아버지를 위해 더 열심히 뛴다.
최영진의 야구 인생, 롤러코스터다. 설악중-속초상고를 나온 그는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해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한일장신대에 입학했지만 내심 야구선수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마음에 뒀다. 그래서 사회복지과에, 그것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한 그는 대학원 준비도 염두에 뒀다. 그런데 전공 성적보다 야구 기록이 더 좋았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오히려 4년 동안 야구가 잘되더라"며 웃었다.
대학 졸업 당시에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2011년 LG에서 육성선수 계약 제의가 들어왔다. 최영진은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이듬해 정식 선수로 계약했다. 그는 "육성선수 입단 당시 김기태(현 KIA 감독) 감독님께서 LG 2군 사령탑에 계셨는데 예쁘게 봐 주셨는지 이듬해(2012년) 1군 감독으로 부임하신 뒤 정식 계약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LG 유니폼을 입고 2012년 43경기에서 타율 0.241(79타수 19안타), 이듬해 6경기 8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2013년 말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최영진은 두산 구단에 지명됐다. 선수층이 두꺼운 두산에선 기회가 좀처럼 없어 거의 2군에 머물렀다. 2014년 4경기, 2015년 고작 1경기 출장이 전부였다. 2016년 말 그는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다. 당시 몇몇 팀에서 최영진에게 관심을 쏟고 있던 터였다. 그는 "정든 코칭스태프와 동료들과 헤어지게 돼 너무 슬퍼 울었다"며 "내 야구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산에서 방출된 그는 2016년 말 삼성과 계약했다. 이후 최영진의 야구 인생은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꽃피우기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2017년 4월 1일 대구 삼성-KIA전. 최영진은 0-7로 뒤진 9회초 이원석의 대수비로 삼성 유니폼을 입고 처음 그라운드를 밟았다. 삼성은 9회말 5-7까지 추격했고, 2사 만루에서 최영진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그는 상대 마무리 투수 임창용의 직구를 공략해 2타점 적시타를 쳤다. 기적 같은 적시타. 결국 삼성은 연장 접전 끝에 7-9로 졌지만 최영진이 홈 팬들에게 남긴 첫인상은 강렬했다.
최영진은 지난 7월 10일 포항 롯데전에서 0-1로 뒤진 2회 상대 선발 브룩스 레일리로부터 역전 2점홈런을 뽑아냈다. 7월 28일 KIA전에선 3타수 2안타에 3-0으로 앞선 5회 2사 만루에서 최원준의 안타성 타구를 멋지게 잡아내 팀 승리를 이끌었다. 김한수 삼성 감독은 "최영진의 수비가 결정적이었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그의 야구 인생의 잊지 못할 순간이 만들어졌다. 7월 29일 KIA전에서 1-0으로 불안하게 앞선 6회말 2사 2루. KIA 벤치는 이지영 타석에서 자동고의4구를 지시했다. 후속 타자 최영진을 상대하겠다는 것. 최영진은 이를 악물었다는 듯 상대 선발 팻 딘의 공을 받아 쳐 3점홈런을 쳤다. 삼성은 기세를 몰아 13-1로 이겼다. 최영진은 수훈 선수로 뽑혀 홈 팬 앞에서 단상 인터뷰를 했다.
최영진은 7월 31일까지 28경기에서 타율 0.314(51타수 16안타) 2홈런 8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선발 출장한 10경기에선 타율 0.389(36타수 14안타)로 훨씬 강하다. 그는 "아무래도 다음 타석에 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니 더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아버지를 위해 더 열심히 뛴다. 그의 아버지는 2015년 폐암 진단을 받고 몇 차례 항암 치료를 진행했다. 그의 어머니와 누나는 아버지의 수술 일정이나 건강 상태에 대해 곧바로 알려 주지 않는다. 최영진은 "내가 야구를 하면서 신경 쓸까 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계속 병원에만 계시니까 TV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면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7월 28·29일 연 이틀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부모님과 곧바로 통화하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 다른 환자들도 입원해 있으니 방해될까 봐 대개 다음 날 기상 이후 어머니께 연락드린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주말마다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강원도 강릉의 병원을 찾았지만 개막 이후 시즌 일정 탓에 단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그다. 최영진은 "이제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도와 드려야 하는 입장이다"며 책임감을 설명했다. 프로 선수로 입지를 넓혀 가며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그럴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
"아버지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냐"고 물었다. 최영진은 "(7월 28일 경기 종료 뒤) 그동안 기회가 없어 경기 이후 TV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항상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고 말문을 이어 갔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아버지, 병 다 낫고 내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꼭 보러 와 주세요." 지금껏 단 한 번도 야구장에 오신 적이 없다고 한다.
최영진은 "예전에는 '어떤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늘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다"고 말했다. 그의 모자 창 안쪽에는 "오늘만 산다"고 적혀 있다.